<특별기고>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고양신문] 지난 2월 27일 수요일, 홍콩에서 만난 독실한 크리스천 학생과 점심을 했다. 내가 2012년 홍콩 중문대학 신과대학의 초빙교수로 갔을 때 만난 20대 학생이다. 그는 자기가 나가는 교회의 선교사로 만주 연길로 가서 조선족 학생들을 위해 재미교포 김진경 총장이 세운 연길 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거기서 만난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 부부가 함께 2017년 겨울 서울로 왔다.

연대와 이대 사이 식당가에서 만난 젊은 부부는 연대와 서강대에서 한국말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18개월 동안 열심히 한글 공부를 마치고 둘이 함께 한국을 떠난다고 해서 나는 그들을 점심에 초대했다. 둘은 새색시의 친정인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가서 6월 말까지 지내다가, 홍콩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홍콩 회의에 초대되어 7월 초에 가게 되어 있으니, 그때 연락해서 만나기로 하자고 했다. 둘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북미회담이 잘 돼서 미국시민이 평양에 다시 들어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나는 미국의 기독교 교육재단에서 일할 때 평양 과기대 건축현장을 시찰하고 재정적 지원을 한 일이 있어서 나도 평양에 다시 가게 되면 거기서도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러면서, 평양에서 6.25 전쟁 때 반공 친미 목사라고 인민군에게 잡혀가 대동강 가에서 총살당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성묘하러 평양에 가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가 다시 개통되면 우리 집 아들, 손주, 며느리와 함께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가 순교자 아버지 무덤 앞에서 70년 만의 추모예배를 드리고, 대동강변 옥류관에서 유명한 냉면을 먹고, 봉수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릴 거라고 큰소리 쳤다. 2004년 5월, 내가 평양에 갔을 때 봉수교회 교인들 앞에서 눈물로 꼭 다시 올 것이라고, 다시 와서 인사드리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큰소리쳤다. 젊은 홍콩 신랑, 미국 신부에게 틀림없이 올해 9월에는 평양 과기대에 가서 영어와 중국어 교수가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평양신학교에 초빙교수로 가게 되면 우리 평양 봉수교회에서 만나자고 굳게 약속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약속, 이 꿈은 24시간 안에 깨어지고 말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회담 결과에 대해서 낙관하고 큰소리치며 성공을 기약했건만, 28일 회담이 결렬되고 말았다. 서로 믿지 못하고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핵무기를 완전 포기한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하거나 안 한 것이었는가 보다. 그런 상황에서,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빠져 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30년 전 이른바 ‘88선언’을 발표하면서 남과 북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고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모두 없애고, 서로 군축을 하고 평화롭게 교류하고 공존공영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이번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을 맺고, 북미 연락사무소들을 열고, 개성공단의 기계들을 다시 돌리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면서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나이 들어 죽기 전에 이별의 한을 풀게 되리라 믿었었는데….

그래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기는 이르다. 90노인인 나는 평양 방문의 꿈을 접어야 할지 모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한 말, "우리 아이들이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진정 믿을 수 있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이 김정은 한 사람의 염원만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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