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문재인 대통령의 제100주년 3‧1운동 기념사가 유령처럼 세간에 떠돌고 있다. 빨갱이라는 유령이! 대통령은 말한다. ‘빨갱이’라는 말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며,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고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되었다.

이른바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 빨리 청산해야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이다.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일시에 저항의 불꽃이 일어났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듯이,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홍길동스럽게 쓴 00신문 대기자로부터, ‘신(新)-메카시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신조어 창조에 앞장 선 한 야당의 대변인까지 등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야 빨갱이들의 천국이 도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싯적 빨갱이 문헌들을 탐독한 결과로 단언컨대, 모두들 안심하시라. 대한민국의 빨갱이는 거의 소멸하였으며, 특히 국회에는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한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없으며, 표방한다 하더라도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이지, 전통적인 빨갱이 정당은 아니다. 심지어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고 있는 정당도 파랭이 정당은 아니다. 파랭이라면 적어도 전통과 보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 정당이어야 하는데, 민족주의 보수 정당이 성립하는 세 가지 조건인, 국민교육, 자주국방, 자립경제를 표방하는 정당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굳이 찾아보자면 현 집권당이 파랭이 정당에 가깝다. 그러고 보니 정당색깔이 파란색이로구나. 그러니 현 집권정당에게 손가락질하며 빨갱이라고 말하는 것은, 철학적, 사회과학적, 역사적 인식의 부족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자기무지의 선언이다. 일찍이 무지가 세상을 구원한 적은 없었다.

우리나라 정당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거개다가 보수주의 정당이다. 정의당 정도가 진보정당의 명패를 걸고 국회에 진출해 있는데,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을 표방하고 있고, 색깔도 황토색이다. 물론 그 외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 원외 소수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러니 붉은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자들이여, 그대들이 보기에 세상이 붉어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도 푸르디푸르다. 그러니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부르기 전에 안과부터 다녀올 일이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았던 역사가 있었다. 이러한 이분법에는 문명은 좋은 것이고, 야만은 나쁜 것이라는 윤리적 전제가 깔려 있다. 서구사회에는 희랍인이 자신을 문명인이라 말하고 다른 지역의 사람을 야만인(barbarian)이라 지칭했으며, 동양에서는 중국인이 자신을 문명인이라 말하고, 타 지역 사람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하여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야만(野蠻)이란 말의 어원은 남만(南蠻)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인을 왜(倭) 또는 구(寇)라 지칭하며 야만인으로 취급하였다. 그것을 애국심이라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모두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인식이다. ‘낙인효과’는 역사상 언제나 있어온 현상이지만,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는다고 해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다양한 색깔이 없어서 걱정이다. 세상이 총천연색인데 흑백TV를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빨갱이의 나라라는 중국과 베트남과도 수교를 맺고 있는 현실로 보자면, 빨갱이 낙인은 역사적 효용성이 다했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무슨 색이냐고? 과거에는 붉었지만, 지금은 많이 탈색되었다. 황금돼지해의 색깔인 피기핑크(piggy pink)? 어랍쇼, 핑크라면 노동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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