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 완간한 이윤옥 소장

독립유공자 남성 1만5000명, 여성 450명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 여전히 평가 못 받아

10년 동안 연구와 집필에만 몰두
숭고한 활약 펼친 여성 200인 담아

 

 
[고양신문] 지난 3월 1일 광화문에서 거행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서는 기미독립선언서를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이 릴레이로 낭독하는 장면이었는데, 마지막을 장엄한 목소리로 낭독한 이는 바로 이윤옥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이었다. 1995년부터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 소장은 지난해 12월 여성독립운동가 200명의 삶을 시와 기록으로 담아낸 『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刊) 전 10권을 완간해 주목을 받았다.

문학박사이자 『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시인인 이윤옥 소장은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시리즈 외에도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 등이 있다.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존재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세상에 호출하는 작업을 10년째 지속하고 있는 이윤옥 소장을 그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외대 연수평가원 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 일본 와세다대학과 교류를 했다. 1997년 학생들과 함께 2ㆍ8독립선언의 현장인 동경 YMCA회관을 방문했는데, 김마리아·황에스더 같은 여성들이 2ㆍ8독립선언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여성 독립지사는 유관순밖에 몰랐는데, 적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독립을 선언한 당당한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가슴이 뛰었다. 이후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이 궁금해 책을 찾아봤는데, 제대로 정리된 책이 한 권도 없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자료를 연구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오랫동안 실천을 못 하다가 2010년 학교를 그만두고 비로소 본격적으로 집필에 매달렸다.

▶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여성 독립운동가의 경우 남아있는 사료가 아주 제한적이고,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여성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의 삶을 한 편의 시로 압축해내는 작업을 도서관에 앉아 논문 쓰듯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능하면 발로 찾아가 후손을 만나고, 국내는 물론 해외 곳곳을 넘나들며 활동 지역을 찾아다녔다. 예전 모습이 사라졌다 해도, 역사 현장의 나무들과 꽃들을 바라보며 숭고한 삶을 바친 분들의 넋을 마음으로 새기며 시를 쓰고 자료를 정리했다.

▶ 10년에 걸쳐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을 마무리했다.

집필을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가 200여 분이었다. 그래서 한 권에 20분씩 담아 10권 목표를 삼고, 1년에 한 권씩 집필했다. 한 분의 여성독립운동가마다 헌시(獻詩)를 한 편씩 올리고, 그분의 행적을 정리했다. 또한 ‘더보기’를 덧붙여 독립운동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전했다. 각 권마다 지역과 활동분야를 골고루 배치해 어느 책을 펼쳐 봐도 여성들이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했다.
 

▶ 책 제목은 어떤 뜻을 담고 있나.

조선의 독립운동은 1895년부터 시작됐다. 국운이 기우는 것을 감지한 경상도의 혁신 유림들이 만주 서간도로 이주를 한다. 이후 서간도는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해 독립운동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들이 함께 했다. 하지만 남성 독립지사들이 독립운동사에 이름을 올리는 동안, 수많은 여성들은 이름 없는 들꽃처럼 역사의 무대에서 져 버리고 말았다. 그분들의 이름을 당당히 다시 불러드리고 싶어 ‘서간도에 들꽃 피다’로 제목을 정했다.

▶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는 말인가.

덜 조명된 정도가 아니다. 국가가 독립운동가 서훈 작업을 1962년이 돼서야 비로소 시작했는데, 1990년까지 거의 다 남자 독립운동가들만 이름을 올렸다. 남성이 1500명이 될 때 여성은 고작 20명이었다. 이후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조금 높아졌고, 특히 문재인 정부에 의해 지난 3ㆍ1절에 여성 75명이 한꺼번에 서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불균형은 여전해 2019년 현재 기준으로 총 서훈자 1만5500명 중 여성은 432명에 불과하다.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한 여성 독립운동가 신정숙 여사. <사진출처=국가보훈처>


▶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앞서 말한 초창기 서간도 이주 가문 중 안동 명문가 며느리 허은 지사와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는 서간도 독립기지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30~40년이나 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독립운동사는 남성들의 시각에 의해 편파적으로 기록된 역사다.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유관순 열사가 추앙받고 있지 않나.

이 땅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했는데, 모든 추모가 한 분에게만 집중되는 게 문제다. 신학기에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 주고 절반을 접어 한쪽에는 남성 독립운동가를, 한쪽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적어보라는 과제를 내곤 한다. 남성쪽은 그래도 10여 분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여성은 유관순 열사 외에는 단 한 명도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성인이나 대학생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유관순 열사 한 분으로 대체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뒤늦게 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된 배화여학교 학생 6명. 왼쪽부터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사진출처=국가보훈처>


▶ 책에는 생소한 이름들이 펼친 활약이 고스란히 담겼다.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또 하나의 부분은 바로 북한땅의 독립운동가들이다. 동풍신 열사는 함경도 화대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동풍신 여사도 유관순 열사와 똑같이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자 기록카드 한 장 남기고 옥사한다. 그래서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두 분은 당연히 하나의 조선일 때 독립운동을 한 것인데 북쪽 출신 동풍신 열사는 철저히 잊혀졌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시 한 편을 헌사했다.

‘…보라 남과 북의 꽃 같은 열일곱 두 소녀 목숨 바쳐 지킨 나라, 어이타 갈라져 등지고 산단 말인가(후략)’

▶ 10년 동안 책을 펴내고 있는데,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정부나 기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일부 받아 전부 자비출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훈처에 지원을 청하기도 했는데, 서훈을 받지 않은 이들이 들어있어서 곤란하다거나 시집이라 곤란하다는 등의 답변을 받았다. 다시 말하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업적을 전부 모은 책은 내 저서들이 유일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앞장 서 하고 있는데, 관료적 태도로만 대하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올해 안에 여성 독립유공자 숫자가 500명을 넘어설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해야 할 작업이 가득 쌓인 셈인데, 더 이상 자부담으로 집필과 출판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 3·1운동 100주년을 기리는 열기가 뜨겁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3ㆍ1만세운동에만 주목하는 건 아쉽다. 앞서 말했듯 이 땅의 독립운동은 19세기 말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의병이 일어나고, 간도와 노령으로 건너가 독립투쟁을 전개하지 않았는가. 역사를 단절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의 긴 흐름의 정점으로서 3·1운동의 의미를 조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잊혀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찾아내고 불러주는,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윤옥 소장의 저서 『서간도에 들꽃 피다』와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도서출판 얼레빗 刊).
이윤옥 소장은 각 권마다 2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담아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을 지난해 12월 완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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