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감기걸린 물고기』

『감기 걸린 물고기』(박정섭 지음, 사계절)

 

[고양신문] “관장님, 김정은이랑 트럼프가 왜 그렇게 친한지 아세요?” “뭔 소리야? 둘이 친하대?” “둘이 좋아하는 여자 이상형이 같아서 그렇대요. 그래서요… 어쩌고저쩌고.” 도서관에 자주 오는 녀석 하나가 신이 나서 떠든다. “음.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유**에서 봤어요.” “잠깐, 넌 지금 허위사실 유포 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건지도 몰라.” 정색하고 이야기했더니 표정이 굳는다. “허위사실 유포 죄가 뭔대요? 전 유**에서 본 걸 이야기하는 건대요?” “그게 사실이 아닐 수 있는데, 니가 지금 나에게 전달한 거잖아. 그 말을 믿은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고, 근데 그게 사실이 아닌 경우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거지.”

 

관장과 친해보려고 재미난 이야기를 꺼냈고, 바쁜 척하는 관장이 귀 기울여 들어주니 신나게 떠들던 아이는 긴 시간 동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소문. 시작은 이랬다.
작은 물고기들이 힘을 합쳐 무리 짓고 있는 바람에 늘 배고픈 아귀는 주린 배를 달랠 아주 좋은 방법을 생각해낸다. “얘들아,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 열이 펄펄 나서 빨간 거야. 그런 것도 몰랐어?” 소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이 말을 믿지 않던 작은 물고기들은 시간이 지나자 의심하기 시작하고 빨간 물고기들을 무리에서 내쫓는다. 그런데 또 들리는 소리. “얘들아, 노란 물고기도 그 사이 감기에 옮았대. 노란 콧물이 나와서 노란 거야. 그런 것도 몰랐어?” “얘들아, 파란 물고기도 감기 걸렸대! 감기 걸리면 으슬으슬 춥거든. 파랗게 질린 얼굴 좀 봐.” 파란 물고기까지 내쫓고 남은 검정 물고기와 회색 물고기. 그때 검정 물고기 한 마리가 외친다. “잠깐! 진짜 감기에 걸린 걸까? 감기 걸린 물고기 본 적 있어?” 이쯤 되자 아귀는 더 이상 소문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 ‘소문의 확산’이 시작된 것이다. 회색 물고기 대 검정 물고기로 나뉘어 맞다 아니다 싸움이 시작되고, 그 사이를 놓칠 리 없는 아귀는 덥석 물고기들을 먹어치운다.

『감기 걸린 물고기』(박정섭 지음, 사계절)는 ‘소문’에 대한 그림책이다. 처음에는 색깔 구별 없이 하나로 뭉쳐있던 작은 물고기들이 소문이 들리자 각자 자기 색깔대로 나눠 모이고, 결국 남은 물고기들은 새로운 소문 없이도 자멸한다는 이야기(책이 이렇게 마무리 되지는 않는다. 훨씬 재미나게 끝난다. 궁금한 분은 책을 끝까지 읽어보시길).

책을 읽다보면, 물고기들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감기 걸린 물고기가 어디 있다고. 아귀의 본질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 소문을 믿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가. 나라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합리적 의심을 하고, 근원지를 찾아보려고 할 텐데 말이다. 물론, 이건 책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다. 실제로 나는 빨간 물고기이다. 어느 때는 파란 물고기, 어느 때는 검정 물고기, 회색 물고기이다. 소문을 그대로 믿어버릴 때도 많을 뿐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재미를 더해 옮기기도 한다. 나쁜 의도가 아니니 큰 죄의식은 없다. 소문을 악의적으로 퍼뜨린 아귀 잘못이지 나는 그냥 걔가 한 말을 옮긴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맨 앞에 선 회색 물고기들의 태도이다. 상대적으로 아귀에서 가장 먼 선두에 선 회색 물고기들은 검정 물고기들의 의심에 반박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내가 직접 봤다고!”라고 외치는 물고기도 나온다. 이렇게 말하면 더 할 말이 없다. 직접 봤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난 또 가끔 이런 회색 물고기이기도 하다. 소문을 믿어버린 나를 믿어버린다. 그러면 어느새 사실이 되고 믿음이 된다. 확신을 갖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그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처음 소문을 퍼뜨린 아귀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문의 힘은 확산에 있다. 그 확산에 역할을 보탠 나는 어느새 아귀에게 먹히는 지도 모르는 물고기이자 거짓말의 전달자인지도 모른다.

한참을 억울해하던 아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재미로 만든 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에 조금 위로를 받고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자주 유**를 보고, 가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미로 하는 말이고, 아이의 말인데 뭘 그리 빡빡하게 굴어야 하나 싶다가도 난 또 “잠깐!”이라고 외친다. “의심해보는 게 나쁜 건 아니야.” 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웃으며 “네!”하고 대답한다.

박미숙 책과 도서관 대표/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이 별로 없다. ‘잠깐!’이라고 외쳐주고, 누군가 ‘잠깐!’이라고 말할 때 멈추고 생각해보는 것. 그래야 색깔 다른 작은 물고기들이 못된 아귀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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