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 십 년간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청소년농부학교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농사를 지은 일이다.

텃밭에 나온 아이들은 농사만 배우는 게 아니다. 농사는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이라 아이들은 농사를 매개로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다. 절기에 맞춰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다보면 작물이 자라는 속도만큼 아이들도 성장을 한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름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텃밭활동을 마친 중3 여학생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을 하듯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선생님, 저 그동안 급식 많이 남겼는데요 앞으로는 절대로 남기지 않을 거예요.”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생각이 깊어진 아이들은 글도 참 잘 쓴다. 청소년농부학교 프로그램에는 시를 써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부모들은 물론이고 소설가인 나조차도 무릎을 칠 정도로 편편이 절창이다

한 번 꽃이 피고 지면 열매가 맺듯이
사랑도 한 번 피고 지면 더 성숙해진다.

중1 남학생이 쓴 열매란 제목의 시 전문인데 다시 봐도 참 좋다.

청소년농부학교를 운영하면서 학교의 요청을 받아 학교에서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텃밭에 대안교실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때 만난 아이들도 텃밭에서 참 잘 놀았다. 담당 선생님은 그 아이들이 무기력의 대명사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텃밭에만 나오면 깔깔대면서 신바람을 냈다. 교실에서 만나면 악마 같다는 아이들도 비록 입은 거칠고 몰래 담배도 피긴 했지만 행동은 유순해서 이끄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텃밭동아리를 이끌었을 때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왕따로 고통 받던 아이가 웃음을 되찾고, 주먹을 앞세워 아이들을 괴롭히던 아이는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극심한 분노장애로 날마다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가 텃밭활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냈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일들은 텃밭이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는 게 힘든 모든 아이들이 텃밭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근사한 일은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정규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바람에서 청소년농부학교를 이끌었던 강사들이 그동안의 경험을 총망라해서 작년에 ‘청소년농부학교’라는 농사교과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바람일 뿐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어쨌건 올해에도 고양어린이농부학교와 고양청소년농부학교가 출발을 했다. 더 많은 아이들을 모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사실이 늘 아쉽다.

신청은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카페(cafe.naver.com/godonet)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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