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성 잘 살려 주민자치 활성화 중점

“아주 잊어먹지도 않아요. 1990년 9월 12일 논에 벼가 영글었을 때예요. 지붕꼭대기까지 물이 찼어요. 한강 둑이 터진 겁니다. 난리도 아니었어요.” 
조병진 능곡동 주민자치위원장은 29년 전 9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장소는 현재 김포대교 인근이다. 그 이후로 일산신도시가 개발되고 점차 논과 밭이 창고로 변해갔다. 하지만 조 위원장이 살고 있는 이곳 신평동은 개발에서 제외됐다. 둑이 터질 때 직접적인 1차 피해를 봤는데도 불구하고 나아진 게 없다. 땅값도 변동 없고 교통편도 그대로다. 일산동구 백석동이 코앞인데 백석역까지 다니는 버스 하나 없다. 불변의 마을이 됐다. 변한 게 하나 있긴 했다. 자유로를 달리는 시끄러운 차 소리와 주민들이 땅을 팔고 마을을 떠나며 사라진 공동체다. “친척들이 모두 한 동네 살았고 120여 가구의 큰 마을이었어요. 지금은 20여 가구가 채 안 남았지요. 그것도 창고를 포함한 가구 수예요. 이런 모든 것들이 서운하고 아쉬워요. 그런데 어떡하겠습니까?”라며 편중된 지역개발과 생활의 불편함, 시와 정치인들의 무관심에 큰 한숨을 내쉬었다.

조병진 능곡동주민자치위원장은 농사를 지으며 삶의 터전인 태어난 고향 신평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대로 살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일산동구 백석동에 가는 버스 하나 없다는 게 안타가워요"라고 말했다. 관공서와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큰 아쉬움을 보였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당일에도 중앙선이 없는 마을 앞 도로에는 차들이 쉴틈없이 빠르게 다녔다.

홍수로 살던 집 잠기기도
1961년생인 그는 당시 신평동과 한강 일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 없다. 29년 전 한강 둑이 터지면서 뭘 챙길 틈도 없이 몸만 빠져 나와 당연했다. 90년 9월 이전의 추억들이 물속으로 잠겼다. 그때 물에 잠긴 집은 지금도 있다. 어디까지 물이 찼냐는 물음에 철재 대문 옆 왼쪽 담벼락 위쪽을 가리킨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인지 그때의 물이 찼던 자국은 남아있지 않았다. 
현재 자유로를 기준으로 한강 둑 아래는 김포였다고 한다. “지금 자유로 옆 습지에는 마을이 있었어요. 한강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둑 안으로 주민들이 이주했지요. 시간이 지나고 둑 안쪽 마을 일부 주민들은 보상을 받고 저기 보이는 주택단지로 이주 했습니다. 일부는 지금의 자리에 정착했고”라며 동쪽을 가리키며 유년시절 한강변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한강을 건너 김포로 갈 때도 나룻배를 탔어요. 서울 마포에 배 타고 배추도 팔러 갔구요. 한강 밀물 썰물을 이용한 겁니다. 언뜻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그땐 가능했어요. 수중보가 생기기 전이니까”라며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그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연마을・아파트 공존, 행정욕구 다양해
토당동 일부지역과 대장동, 내곡동, 신평동 등 4개의 법정동이 하나를 이룬 능곡동은 1만64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28개 통이 있다. 조 위원장은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해 왔지만 자연마을과 도시화된 지역의 특성을 조화롭게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연부락과 아파트가 공존하는 도농복합지역이라 행정수요와 욕구가 다양해 주민자치위원회도 다양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복지센터와 능곡역 주변은 도시화 되어 있지만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자연마을이고 창고와 상가가 듬성듬성 있다. 그린벨트도 많다. “위원회를 능력껏 잘 이끌어가기가 쉽진 않지만 어렵지도 않아요”라며 위원들 각자의 거주지역 특성을 최대한 반영해 조화로운 능곡동을 만들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현재 능곡동주민자치위원회는 27명의 위원들이 있으며, 직능단체도 10여 개가 활동하고 있다. 문화강좌는 23개가 운영되는데 그중 라인댄스와 노래교실, 컴퓨터교실 등 건강과 생활 강좌 인기가 높다. 
올해 초에는 행정복지센터 1층에 북카페를 오픈해 민원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커피와 차가 있는 조그만 공간으로 낯설어 했던 주민들도 이제는 익숙해진 공간으로 자주 찾고 있다. 

참여와 관심으로 자치위 활성화에 중점
7000여 평 농사를 짓는 조병진 주민자치위원장은 지난 2월 13일부터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주민들이 지역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경험과 연륜을 현장에 최대한 살리고 있다. 
“지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오밀조밀한 소통으로 마을의 균형추를 맞추려고 합니다. 주민자치위원회 활성화가 참여와 관심이라는 두 개의 추로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적극 나누려 합니다. 살기 좋은 능곡동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뛸 테니 지켜봐주세요.”
12년 동안 능곡18통장으로, 8년여를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해 온 그는 한우도 키우면서 수경재배 딸기 농사도 준비하고 있다. 딸기는 내년부터 수확할 예정이다. 능곡동도 빨간 딸기와 함께 내년 초면 소통과 화합의 마을로 무르익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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