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문고·알뜨레노띠 공동 주최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4) - 김동국 작가

모두를 위한, 아무도 위하지 않는 철학
지식축적 넘어서는 현재진행형 사유 주문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 4월 강사로 초청돼 니체 철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동국 작가.

 

[고양신문] 고양을 대표하는 지역서점 한양문고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알뜨레노띠침대가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이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 4월 1일 강연에는 미학자 김동국 작가를 초청했다. 그는 서양 철학과 종교적 전통을 뒤흔드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 니체의 독특한 사유를 친절하게 짚어줬다.

그가 선정한 강의 제목은 ‘모두를 위한, 아무도 위하지 않는 철학’이었다. 그는 니체의 책에 등장하는 이 문구가 니체 철학을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하며, 니체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걷어내고 니체의 참모습에 다가갈 것을 주문했다.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동국 작가는 한양문고에서 매월 1·3주 목요일 오전 철학과 예술이 어떻게 조우했는지를 살펴보는 ‘철학자들의 예술가’라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니체 철학을 다룬 책을 선보일 예정이다.
강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오늘날 니체는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추앙받지만 1880년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을 당시만 해도 40권을 자비로 찍어 겨우 7권을 배포했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인이었다. 그의 명성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1890년, 니체는 거리에서 말을 때리는 마부를 말리다가 쓰러져 실어증에 걸린 후 10년 동안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사망한다.

이후 친 나치적 성향을 가진 여동생에 의해 니체의 철학이 왜곡돼 세상에 알려진 탓에 오늘날까지도 니체가 반동적 철학자라는 오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제 니체는 군국주의, 전쟁, 무리짓기 따위를 명백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니체를 재발견한 이들은 들뢰즈로 대표되는, 프랑스 68혁명 세대 철학자들이다. 참과 거짓을 가르는 서양철학, 그리고 선과 악의 이분법에 얽매인 기독교의 한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은 니체 사상의 위대함이 비로소 새롭게 해석되고 조명된 것이다.
 

철학, 미래의 수신자에게 띄우는 편지

니체가 쓴 『비극의 탄생』에 등장하는 ‘모두를 위한, 아무도 위하지 않는 철학’이라는 문장은 니체 철학의 핵심을 정확히 요약하고 있다. 니체는 자신의 책이 누군가의 쓸모를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늘 유용성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는 로봇이다. 아무 쓸모없는 무용성이야말로 인문학의 가치를 규정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어딘가에 명백히 쓸모가 있다는 것은, 그 쓸모가 충족되면 버려져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 음악, 시, 철학과 같은 것들은 쓸모없음 덕분에 역설적으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분야야말로 인간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철학은 당대의 누군가에게 건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먼 미래에 살아갈 미지의 수신자에게 띄우는 긴 편지에 가깝다. 미지의 생명체를 향해 우주선에 실어 보내는 기록장치를 연상해도 좋겠다. 니체 역시 “나는 너무 빨리 왔다. 100년 후에는 내 철학이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아무도 위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곧 ‘미래의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을 ‘공적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니체의 시각에서 보자면 대통령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배제해야 하는, 지극히 사적인 존재다. 니체의 철학은 일체의 사적 공간 너머의 ‘공적 인류’ 전체를 향한다.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 강연은 매회 강의장에 빈자리를 찾을 수 없는 열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


지금·여기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철학은 나와는 다른 존재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말이 잘 통하는 이와의 대화는 독백의 연장선일 뿐이다. 미지의 존재와 부딪히는 것이기에, 철학은 늘 미숙한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대상을 소유하는 게 사랑이 아니듯, 지식을 축적하는 게 철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는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불편하고 낯선 상황에서 비로소 철학이 시작된다.

니체는 반시대적 철학자로 불린다. 무국적자로서 방랑의 삶을 살기도 했지만, 사상적으로 끊임없이 자기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유는 누구나 자기가 속한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니체는 이에 저항하며 ‘지금 세대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라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무모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한때 노마디즘(유목주의)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사실 어딘가에 편입돼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정착민에 비해 유목민은 거친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니체는 ‘우리’라는 이름 안에 정주하는 것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니체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 전통사회가 무너지며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때다. 자연의 순환에 기대어 살아가던 이들이 의미 없는 반복적 노동에 내던져진 것이다. 또한 사회시스템에 유용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획일화된 교육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대중 교양과 문화가 니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새로운 정치체제로 등장한 민주정 역시 허점투성이의 불완전한 제도였다. 그는 “다수의 군중에 기댄 민주정은 반드시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고, 개인적 양심은 ‘이웃’의 이름으로 버려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김동국 작가는 한양문고에서 매월 1·3주 목요일 오전 ‘철학자들의 예술가’라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정당화해 줄 신은 없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도 유명하다. 이 말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온 신(예수)이 타인을 위해 스스로 죽었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닐까. 니체는 제도화되고 사회적 억압의 도구가 된 기독교를 부정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한 예수에게 주목했다.

니체는 인간이 자신의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신을 이용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스스로가 신이 돼야 한다는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나의 행동을 정당화해 줄 누군가로서의 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자 스스로 행동에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나를 둘러싸고 살아가는 이웃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니체는 ‘주변의 우리 편’을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아무도 위하지 않는 철학이 모두를 위한 철학이듯, 가장 먼 곳에 있는 존재를 향한 사랑이 어쩌면 가장 성숙하고 위대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 5월 강연 예고

초청강사 : 김경윤(인문학작가,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
일시 : 5월 13일(월) 오후 7시
장소 :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
수강료 : 1만원
문의 : 031-919-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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