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정수남 소설집 『앉지 못하는 새』

실향민, 중년의 불안, 촛불광장...
각양각색 담은 소설 10편 수록

 

정수남 소설집 『앉지 못하는 새』에는 표제작을 비롯한 10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고양신문] 1997년부터 후곡마을에서 일산문화학교를 이끌어 온 정수남 작가가 최근 소설집 『앉지 못하는 새』(도화 刊)를 발표했다.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며 묶어낸 소설집이 어느새 일곱 번째다. 자유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정수남 작가는 고양작가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한, 고양을 대표하는 문인 중 한 명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소설에는 다양한 연령과 신분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이다. 각양각색의 ‘떠도는 이들’의 스케치를 모아 정수남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라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을 채워가고 있다.

표제작 ‘앉지 못하는 새’는 휴전선 부근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 노인의 아들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했다. 젊은 나이에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단절돼 70년 세월 동안 늘 귀향의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던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는 분단이 가져온 비극과 함께 생존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의 자취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아버지의 삶을 ‘어디에도 앉지 못하는 새’에 비유하며 차분한 진술을 이어가는 아들의 모습은 스스로 실향민 2세대인 작가 자신의 초상인지도 모른다.

‘정착’에 대한 고민은 정수남 작가의 영원한 화두인 것 같다. ‘그림자놀이’의 주인공은 어렵게 마련한 고향 선산이 택지개발에 수용돼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성묘를 간다. 아내와 아들은 보상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있지만, 선산에 묻힌 아버지와 형의 일생을 회고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못난 나무처럼 꿋꿋하게 고향을 지킨 친구와 위로의 소주잔을 나누며 주인공은 어릴 적 친구들과 즐겼던 그림자놀이를 떠올린다. ‘아무리 밟아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밟고 또 밟던 놀이…’는 정착의 불가능성 앞에 번번이 상심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비유로 읽힌다.

후반부에 실린 ‘파라다이스 유료낚시터’와 ‘가나안 기사식당’은 정수남 작가가 몇 해 전부터 시작한 ‘우리동네 연작’의 서두를 연 작품들이다.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동네 주변의 구체적인 장소를 소재로 삼아 현대인의 다양한 초상을 담아내겠다는 창작 의도는 작품 속에서 온전히 구현된다. ‘파라다이스 유료낚시터’에는 길고도 불확실한 은퇴 이후의 삶과 맞닥뜨려야 하는 중년의 불안감이 다채롭게 그려졌다. 그런가 하면 ‘가나안 기사식당’은 광화문에서 촛불시위와 태극기부대가 대립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변두리 기사식당 여사장이 월남전 참전용사인 남편과 운동권 대학생 출신 딸 사이에서 겪는 소통의 고민을 그리고 있다.

그밖에도 정수남 작가의 작품 주인공들은 모두가 각자의 이유와 사정으로 인해 일정 분량의 불안과 상실감을 안고 세상 속에 던져진 채 떠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한 없이 따뜻하다. 누구도 파국적 절망으로 몰아넣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의지의 끈 한 자락을 쥐어주고자 하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야말로 정수남 작가의 작품세계를 지탱하는 든든한 토대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최근 자신의 7번째 소설집 『앉지 못하는 새』를 출간한 정수남 작가.


소설집 첫머리에 실린 작가의 말은 문학을 향한 정 작가의 일관된 성실함을 잘 보여준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섰던 절망 가운데에서 나를 건져 준 것이 소설문학’이라고 말하며 ‘기억의 뒤안길에서 길어 올린 열 편의 내 아이들이 모두 자신만의 색깔을 갖기를 바란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여장을 꾸려 내 기억속으로 또 길을 떠날 예정’이라고 밝힌다.

만년으로 들어서며 더욱 깊고 열정적인 창작의 모닥불을 지피며 소설문학의 본령을 지키는 정수남 작가의 존재는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더군다나 고양의 이웃들에게 그 자체로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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