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뉴질랜드 테러와 총리 ‘저신다 아던’

[고양신문]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 두 곳에서 총격으로 5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치는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슬람을 증오하는 한 극우성향 백인청년의 테러였다. 카메라에 부착된 헬멧을 쓰고 자신의 총격을 페이스북에 생중계한 이 사건은, 뉴질랜드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세계에 더욱 충격적을 준 것은 이 상황을 대응하는 30대의 젊은 ‘저신다 아던’ 여자총리의 태도였다.

그녀는 희생된 장소에 이슬람 의상인 ‘히잡’을 쓰고 방문했다. 그리고 충격에 빠진 가족과 무슬림공동체의 사람들을 만나 얼굴에 빰을 대며 함께 흐느껴 울었다. 곧이어 그녀는 ‘그들이(희생자들) 우리다’라고 말했다.

이제껏 국가들은 테러에 대해 힘과 보복으로 대응했고, 그들을 악마화하며 구분해온 여느 나라 지도자와 확연히 다른 통합과 일치의 리더십을 보인 것이다. 이어서 그녀는 무슬림공동체의 경비를 강화하고 장례비 일체와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4일 뒤 의회연설에 아랍어로 ‘앗살람 알레이쿰’으로 인사하면서, 국민들에게도 태러범보다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감한 제도적인 장치로 10일 안엔 총기법을 개혁하겠다고 선언한 점이었다.

국가적 분열이 우려되는 상황을 통합하며, 약자들과 공감하고 난민들을 적극 수용하는 정치적 자세, 그리고 재직 중에 출산한 아기를 유엔총회에 데리고 출석하기도 한 저신다 아던의 리더십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지지를 받고있다. 이어 뉴질랜드 모든 초ㆍ중ㆍ고ㆍ대학교와 심지어 축구팀까지 희생자를 애도하는 등, 전 국민적 통합의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나는 구하러 오지 말라

2005년 이라크전쟁 당시 평화와 인권운동을 하던 4명의 크리스천들이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다. 이들은 그냥 선교단체가 아니라 투옥과 살해를 무릅쓰고 집총거부와 대체복무를 실천해온 기독교평화사역팀(CPT)이라는 퀘이커 평화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전쟁 중에 미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거나 억류 중인 이라크 민간인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분쟁지역에서 인권활동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당시 인질로 잡힌 이들을 위해 퀘이커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운동가와 이슬람 정치인들, 팔레스타인의 주민들까지 석방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자신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인데도 자국인 미국을 비난하면서 어떠한 구출작전이나 인질범을 향해 무력압박도 행사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 사건이 역사상 처음 인질들이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희한한 사건으로 기록돼있다. 인질범들은 미군철수와 이라크 포로 석방을 요구하며 4개월 후 인질 중 한명을 살해하자 결국 유엔군은 그들의 숨겨진 장소를 급습했지만 인질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목숨을 구해달라고 하지 않는 이들이 인질로서 가치가 없어지자 인질범들은 조용히 풀어줘 버린 것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이들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어떠한 폭력에도 반대하고 누구도 처벌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은 적과 나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에게조차도 자비와 연민으로 품으려는 비폭력 평화운동가들의 놀라운 행동의 표상으로 칭송되고 있다.

구분하고 가르기가 폭력의 시작

나와 너를 가르고 적으로 규정하며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힘에 의한 평화는 결국 증오를 반복하고 전쟁을 증폭시킨다. 오히려 공감하고 통합하며, 적까지도 품어 앉는 철저한 비폭력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구현이다. 남한이 북한을 힘으로 제압해 흡수통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것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당연히 파괴적 분노와 증오가 반복될 뿐이다.

‘그들이 우리다’라고 말한 저신다 아던 총리, 인질범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퀘이커 평화운동가 등 고통스럽지만 평화실현을 위해 희생된 분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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