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상만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대한민국은 ‘징병제의 나라’이다. 남자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병역은 신성한 의무라며 늘 국가로부터 교육받았다. 하지만 이런 신성한 의무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에 와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켜켜이 한이 쌓여 처음에는 나라를 원망하다가 종내에는 죄도 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로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돌려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군사망사고 피해 유족이 그들이다.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난 때는 1998년 5월이었다. 어느덧 만 21년 전의 일이다. 그때 서울 명동의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 한 남자가 우리를 찾아왔다. 50대 초로의 그는 군인이었던 자기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인연은 이후 또 다른 500여명의 피해 유족을 만나는 계기로 이어졌다.

그들의 사연은 다양했고 또 상상 그 이상으로 애달팠다. 몇 사례는 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었다. 군에 입대시킨 아들을 이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한 아버지가 그랬다. “훈련소 퇴소한 후엔 면회가 가능하지 않냐”며 그 아버지에게 물으니 내 앞으로 조용히 내 미는 낡은 서류 한 장. 1983년에 작성된 그 서류는 당시 아들이 근무하던 부대의 대대장이 보내온 ‘가정 통지문’이었다. 통지문 말미에는 “근무가 바쁘니 가급적 부대 방문을 하지 마시고 휴가 나가면 그때 반갑게 맞이해 주시면 고맙겠다”는 문구가 대대장 이름 위에 적혀 있었다. 그런 통지문을 받고도 면회를 갔다가 혹여 아들에게 피해나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아버지는 끝내 면회를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휴가 나오기 3일 전에 죽었다는 통보가 새벽녘 비명처럼 전해졌다고 한다. 자살을 했는데 그것도 가슴과 머리에 모두 3발이나 쏘고 죽었다는 결론. 이후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오늘까지 싸우고 있다. 그 세월이 무려 35년째. 사건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그 아버지는 지금 80대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사연마저 부럽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들이 군에 입대했는데 그 후 영문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세월이 무려 36년. 그야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어 사망신고조차 할 수 없고 제사도 지낼 수 없다는 사연은 그야말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런 사연이 놀랍게도 하나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 ‘신과 함께’처럼 탈영 처리된 군인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사실이 드러난 것은 지난 2018년 9월 14일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이다. 출범 후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 위원회에는 300건이 넘는 군 관련 민원이 접수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멀다. 우리나라에서 복무 중 사망했으나 순직처리 조차 되지 못한 군인은 약 3만9000명. 지난 1948년 군 창설 이래 나눠보면 한 해 평균 580명이 그렇게 죽어간 것이다.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달라야 한다. 모병제 국가보다 더 정의롭고 공정하게 군인을 대하고 예우해야 한다.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어야 하며 죽었으면 왜 죽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줘야 한다. 그래야 의무복무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강조할 수 있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그런 국가의 역할을 위해 지난 2018년 9월 14일 출범한 국가 기관이다. 군에서 가족을 잃은 분이라면, 그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진실이 남아 있다면 문을 두드려 달라. 이를 통해 ‘내 아들은 어디로 갔냐’는 그 부모의 물음에 국가는 답을 해야 한다. 억울함을 떨쳐내지 못한 그 젊은 영혼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원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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