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속 ‘정의와 자유’

석영중 고려대 교수 귀가쫑긋 강연
『죄와 벌』 속 ‘정의와 자유’

 

지난 5일 귀가쫑긋에서 강연중인 석영중 교수


“찌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난 5일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들려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죄와 벌』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1980년대 미국 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첫 문장’으로 꼽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평범한 듯 보이는 문장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자유를 위한 모든 여정을 담아놨기 때문이라는 것.

석 교수는 도스토옙스키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의 인생과 문학 이야기를 담은 『매핑 도스토옙스키』를 올 3월 출간했다. 『죄와 벌』을 주제로 한 그의 강연을 요약한다.

고통과 혼돈으로 얼룩진 삶

도스토옙스키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석 교수는 그를 연구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슬플 때 그의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힘든 이야기들은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면서 경험한 것들과 그것을 이겨낸 것을 기록한 것이기에 감동을 준다.

그는 너무나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다. 28세에 반체제 서클 활동을 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30대에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일반 형사범들과 함께 10년 간 유배생활을 했다. 이런 이유로 그에게 자유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평생 간질 질환, 간질 발작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고, 인생 말기에는 폐기종을 앓았고, 기관지 천식 등이 자주 발발했다. 한 살 터울인 형이 지병으로 45세에 세상을 하직한 뒤 그의 빚을 떠안고 유가족을 끝까지 보살펴야 했다. 첫 번째 결혼한 부인과 첫째 딸, 둘째 아들도 일찍 죽었다.

그는 낭비벽도 심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탕진했고, 돈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 습작 원고 여백에 쓰여 있는 숫자들은 다 원고료를 계산한 것이다. 첫 번째 소설 제목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 작가로 유명해졌다. 이후 선불을 받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됐다.

처음 도박에서 돈을 딴 후 도박꾼이 됐다. 도박을 하느라 7년 동안 전당포를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비스바덴 도박장에는 그의 동상과 기념홀이 있을 정도다. 도박을 하다 마감에 쫓겨 한 달도 안 걸려 쓴 소설이 바로 『도박꾼』이다. 두 번째 부인, 안나 스니트키나는 이 작품의 속기사로 일했던 젊은 여인이었다.

영원한 고전 『죄와 벌』

『죄와 벌』은 라스콜리니코프라는 가난한 어느 휴학생의 도끼 살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867년에 쓰여진 이 소설에는 상뜨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산업화, 도시빈민화, 대기오염, 성매매 문제 등 당대 러시아 사회의 여러 가지 상황이 들어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악독한 전당포 노파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정의일 수 있다는 공리사상을 믿고 있었다. 그는 완전범죄를 저질렀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살까지 생각하다 거리의 여자 소냐에게 자백을 하게 됐고,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설득을 통해 자수를 하게 된다.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유를 찾는다.

정의와 자유란 무엇인가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명의 악당을 죽여 백 명의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부를 나눠 주고자 했다. 그런데 정의는 공정하고 의로운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의롭기 위해 있어야 할 한 가지가 빠져있다. 그는 전당포 노파와 목격자인 백치 여동생까지 죽이는 이중 살인을 했다. 여동생은 신앙심이 깊은 선한 사람으로, 지적으로, 경제적으로 최하층민이고 궁극의 약자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이 정의가 되려면, 여동생과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정작 그를 죽인 것이다.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내키지만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치로서의 자유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은데 미워하지 않는 것, 집착하지 않는 것, 억눌러서 이겨내야 하는 것 등이 있다. 절제와 억제, 완벽한 자기 자신의 통제를 통해 스스로 해방되는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시베리아 유형지는 현실에서는 감옥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라스콜리니코프는 이곳에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마음의 감옥에서 나오는 탁 트인 해방의 공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자유란 궁극에 가서는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인간이 스스로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도덕적 상태를 획득할 정도로 자아를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를 극복하는데 있다.”
 

강연중인 석영중 교수와 청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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