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이정희 매헌춤보존회장

매헌춤보존회, 경기도무형문화재64호 
‘경기도당굿시나위춤’ 보유단체
도살이춤 보유자 김숙자 선생에 사사
“도살풀이춤, 널리 알리고파”


[고양신문] ‘고양시민을 위한 경기도당굿시나위춤’ 공연이 19일 오후 2시와 5시 일산호수공원 노래하는 분수대에서 펼쳐졌다. 맑은 봄날, 호수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기도당굿 시나위춤 공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부채춤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64호 경기도당굿시나위춤 7바탕인 부정놀이, 터벌림, 깨끔, 제석, 올림채, 진쇠, 도살풀이춤의 재현공연과 경기민요의 축하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었던 특별한 무대였다. 매헌춤보존회(회장 이정희)는 지난해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도당굿시나위춤 보유단체다. 

이정희 회장은 “앞으로도 경기도의 우수한 전통예술인 경기도당굿시나위춤의 전승과 보급에 힘쓰며 지역 전통문화 발전과 계승에 앞장서는 매헌춤보존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방송PD 통해 김숙자 선생과 인연
‘경기도당굿 시나위춤’ 7바탕 모두를 무형문화재로 등재시킨 일등공신 매헌춤보존회 이정희 회장은 밀양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이 하고 싶었지만 몸이 허약해서 부모님이 반대했다고 한다. 강당에서 무용반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기만 하다가 밀양여자중학교 시절부터 무용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밀성여고를 졸업하던 해에 밀양백중놀이에 참가했고, 그때 촬영차 온 KBS ‘한국의 재발견’팀 PD가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고 “서울에 올라와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춤을 배워보라”며 서울 김숙자 선생을 알려줬다.

당시 부산여대 무용과에 갈 계획이었던 딸이 대학도 포기하고 갑자기 서울에 올라가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에게 춤을 배우겠다고 하니 부모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친은 “서울 가면 너보다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가서 어떻게 하려고 고집피우냐”며 “부산여대 가서 무용을 배우라”며 반대하셨다.  

울고불고 단식까지 하며 승낙을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1978년 6월, 19세 아가씨는 KBS PD와 함께 김숙자 선생이 살고 있는 이문동으로 갔다. 당시 이문동에는 커다란 연탄공장이 있어서 도로가 새카맸다. 밀양 남천강 옆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서 ‘샌드위치’ 먹으며 유복한 삶을 살던 그녀가 만난 낯선 도시 서울은 실망스러웠다. 

드디어, 도착한 허름한 건물 2층의 김숙자 선생 연습실. 복도에 석유곤로와 서랍장, 그릇을 넣어두는 찬장이 있었고, 문을 열며 김숙자 선생이 나왔다. 이 회장은 “남자들이 입는 흰색 반팔 런닝구(러닝셔츠)에 고쟁이를 입고 담배를 물고 나오는 김숙자 선생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그런 모습이 싫지 않았으니, 운명의 길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19세 밀양 아가씨는 처음 만난 50대 중반 여인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초라한 옷차림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가난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때부터 이 회장은 학원 겸 숙소로 사용하는 그곳에서 김숙자 선생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내가 대학 진학의사를 비추니 선생님은 노발대발하시면서 ‘거기 가면 낮에는 널뛰듯 뛰는 춤사위를 배워야하고 밤에는 여기서 이 춤을 배워야하는데 그건 극과 극이다. 오로지 이 춤에 네 인생을 걸어라. 여기서 이 춤을 배우면 네 때가 온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도살풀이춤 대중화에 온 힘 쏟아
선생님의 말대로 그 때가 빨리 오는 듯했다. 1980년 전주대사습대회에 처음 참가했고, 4년만인 84년 대회에서 무용부문 장원을 차지했다. 게다가 86년 김숙자 선생의 춤이 문화재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고, 90년 10월 중요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으로 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김숙자 선생은 후두암 투병 중이었다. 91년 10월, 이수자로 지정하자고 하시며 서류를 문화재청에 넣었지만 그해 12월 23일 선생이 작고하셨다. 서류 넣은 지 2개월밖에 안된 이 회장은 ‘전수자’ 명단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가족을 떠나 오로지 인생을 걸고 도살풀이춤을 배웠던 12년간의 세월이 흘렀다. 30대 초반의 나이가 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도살풀이춤뿐이었다. 전수자도 아니었고 이수자도 아니었고 전수조교도 아니었다. “믿어주시던 스승도 안계셨고, 공인받을 수 있는 자격증 하나 없이 12년간 춤만 배운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며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마디마디가 눈물의 삶이었다”고 말한다.

어려움에 처한 그녀에게 길이 열렸다.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 선생은 어릴 때 김숙자 선생에게 장단 공부를 했고, 이 회장이 춤을 배웠었는데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김덕수 선생은 장단을 가르치고, 이 회장은 김숙자 선생의 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예술종합대학뿐만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고양문화원과 노원문화원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고, 올해도 고양문화원에서 교육하고 있다. 또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전승소에서 후학양성과 매헌춤 전수를 위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무료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스승에게 배웠던 경기도당굿 도살풀이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녀는 어디라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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