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업예산을 줄이고 시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복지예산의 확충, 개발과 팽창중심의 사업계획 및 예산편성을 지양하고 환경친화적 생태보존 가치 도입. 시민단체 여러분께서 조언해주신 내용들이 지금의 시장님께서 지시하시는 예산 편성 방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지난달 29일 고양시의회 3층 회의실에는 김명희 기획실장을 비롯한 예산담당 공무원들과 고양시민단체 연대회의 소속 임원과 회원들이 함께 모였다. 내년 예산편성에 대해 시민단체는 그동안 연대회의 차원에서 논의한 건의사항을 전달하고 시청 담당자들은 이를 듣기 위한 자리였다.

그동안 NGO와 행정기관은 대립의 관계에 서있었다.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정보공개 요구에 한쪽에서는 ‘고유업무’‘대외비’라는 명분으로 맞서며 양측의 대립은 한때 공권력을 부르기도 했다. 고양시청 정문 앞에서, 시장실을 점거하고 ‘시장나오라’며 고함을 지르는 시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애써 외면한 표정의 담당자들이 철문 저 안에 서서 시위대열을 바라보고 그들 사이엔 전경들의 굳은 표정이 있었다.

이렇게 공무서식 표현으로 ‘관과 민’이 사안에 대해 바로 대립양상을 띄게 되는 이유는 닫힌 행정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착공이후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노래하는 분수대’의 경우 담당자들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너무 늦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민우회나 시민단체들이 분수대의 실체를 알게 된 시점은 이미 ‘게임’이 끝난 다음이었다. 분수대 사업은 당초 경기도 외자유치 사업으로 처음 고양시에 유치할 당시에는 이를 ‘자랑’으로 삼은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업 주체인 고양시는 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시민들에게 주지 않았다.

이러한 기존 행정기관과 NGO의 고정관념을 깨고 이번에 최초로 정책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예산 편성에 대한 사전 간담회는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김유임, 강영모 시의원들의 중재 역할도 컸지만 간담회를 흔쾌히 받아들인 고양시의 변모된 모습이 기분좋다. 조그마한 정보 조각도 대외비라며 감추던 예전의 관행을 생각한다면 담당 실장과 예산, 문화, 여성 등 부서별 책임자까지 함께 한 이날의 간담회는 달라진 시청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시민단체 연대회의 측은 보육, 문화, 환경, 노동복지 등 분야별로 시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사업의 예산 증액과 편성을 요구했다. 장애아 통합교육 지원, 야간 24시 보육 확대, 시립 보육시설 확충 요구 등은 정부 차원의 보육 정책과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작은 도서관을 육성하고 보다 질좋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급식 지원을 하라는 내용은 교육의 도시 고양시에 적절한 지적이라 하겠다. 행정절차나 예산 관련 지식이 익숙하지 않은 시민단체들이 이러한 지적을 세부적으로 해내기까지는 예산 감시 네트워크 구축, 예산 웍샵 등 다양한 준비가 있었다. 중요한 정책제안을 위해 예산감시가 필수적이라는 문제의식 속에 아기를 등에 업고 유모차에 태운 주부, 출근을 조금 미룬 직장인들이 졸음을 참아가며 전문가들로부터 예산교육을 받았다. 올해는 좀더 심화시킨 예산 웍샵도 실시됐다.

물론 이번 간담회에서 논의된 예산 액수는 130억 정도로 크지 않고 일부 분야에 국한돼있다. 시청 담당자들의 답변도 매우 ‘원칙적’이었다. 그러나 처음의 만남은 작았지만 준비된 노력이 계속되는 만큼 기대되는 결실은 크다. 정부에서도 예산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복식부기를 도입한다고 한다. 열린 예산편성의 모범사례로 고양시가 전국에서 자료요청을 받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를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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