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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데뷔<높빛시론> 이권우
  • 이권우 도서평론가
  • 승인 2019.04.25 12:34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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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강의하다 보면 등골이 서늘할 적이 있다. 수강생 무리에 전문가가 버젓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다.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강의하다 보면 불쾌한 경험도 자주 한다. 기본적으로 경청하는 자세라기보다는 얼마나 똑똑한지 시험해보겠다는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는 이도 있고, 질문이랍시고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이들도 있다. 정작 전문가는 다르다. 더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듣는다. 사실 그런 지라 더 부담이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도 다른 사람의 강의를 기회 닿는 대로 들으려 애쓴다. 제일 먼저 전달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듣는다. 안다고 전문가가 아니다. 알아먹게 할 줄 알아야 진짜 전문가다. 강의를 듣다 혀를 내두를만큼 빼어난 재주를 보인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정도에는 못 미치더라도, 끝까지 듣게 하는 방식을 찾는데 다른 전문가의 강연이 도움이 많이 된다.

지난 3월말에 가좌도서관에서 ‘엄마를 위한 인문학’ 연속강의가 있었다. 나도 강사로 참여했는데, 내 강의가 끝난 다음 다른 강사의 강의를 들었다. 그 가운데 음악평론가 최윤구씨의 강의가 진솔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강의 제목이 ‘모차르트 임펙트’이니, 무슨 내용인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터다. 태교 때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아이에게 두루 좋다, 또는 아예 천재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말을 하리라 기대했을 터다. 그런데 처음부터 수강생들이 시쳇말로 빵, 하고 터졌다. 공식적으로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다고 어떤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고 해서다. 한방에 기대를 무너뜨리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음악을 주제로 강의하는 것의 장점을 엿보았다. 한참 해설하다 목이 아플 때쯤 유투브로 연주장면을 틀어주었더니, 수강생들이 집중했다. 아, 나도 클래식 전문가가 되었더라면, 강의 도중에 쉬면서도 수강생의 흥미를 돋았을 텐데, 라고 감탄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나는 클래식에는 젬병이니 말이다.

최윤구씨가 강의하다 메나헴 프레슬러라는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와 나중에 찾아본 자료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그는 클래식 애호가한테는 이미 유명한 연주가라 한다. 1923년생인데, 1946년 드뷔시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며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이 정도면 대중한테도 널리 알려졌을 텐데 그는 다른 길을 걸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유명해졌다. 1950년대부터 교수를 하며 후학양성에 힘썼고, 1955년 보자르 트리오(Beaux Arts Trio)를 결성해 실내악 연주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가 85세 되던 해에 보자르 트리오를 해체했을 적에 여러 전문가가 은퇴를 예상했으나, 이번에도 그는 다른 길을 걸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면서 독주음반을 내놓았다. 그리고 91세 되던 2014년 1월, 베를린 필하모니와 협연했다. 이 연주회의 부제는 ‘전설의 데뷔’.

이 정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법이다. 감동의 쓰나미가 덮치기 마련이다. 메나헴 프레슬러를 소개하기 전에 나온 음악가가 다들 어릴 적 천재소리 들은 이들이니 대비되면서 감동은 몇 배 증폭되었다. 그런데 최윤구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필살기를 썼다. 메나헴 프레슬러의 연주회 장면을 보여준 것. 아무리 음악에 문외한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피아노 건반을 장인적 성실성과 예술성을 발휘하며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오래 살아서 누리는 영광이 아니다. 천재여서 받는 갈채가 아니다. 오로지 진정으로 그것을 사랑해온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어떤 경지를 시현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최윤구씨는 강연에서 내 자식을 남보다 앞서게 하려고 채근하는 것보다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 사랑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말한 듯싶다(강의 들은 지 시간이 꽤 지나 기억이 가물거린다). 과도한 교육열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나는 거기에 보태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가를 곱씹어 보았다. 더 많은 것을 누리려 누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걸어온 길의 마지막 지점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를 받는 삶이기를 소망하기로 했다. 아 참, 5월 25일 토요일 10시, 가좌도서관에서 김민식 MBC PD가 ‘도서관이 내게 준 선물, 독서, 영어, 글쓰기’를 강의한단다. 이번에도 수강생으로 참여해 또 다른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계획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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