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환자들의 절친이 되어준 이웃 <박연주 약사>

▲ 고양시 행신동 서정약국 박연주 약사.

정신질환 흔한 질병 인식돼야
위기 가정에선 극단으로 악화
가정과 병원 사이 안전망 필요
'지역사회의 대처 절실하다'


[고양신문] 최근 조현병을 앓는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대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신질환 환자는 꾸준히 늘어나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 꽤 오래 됐지만 이들에 대한 대처는 가정 안에서 해결하거나 병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양극단으로 처방되어 왔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고양시의 한 약사가 환자로 찾아온 정신질환자들을 따뜻한 이웃으로 맞이하며 개인 차원이지만 안전망이 되어 준 사례가 있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초 출범한 고양시자살예방센터는 정신의학과 인근 약국과 연계해 다양한 인식전환 캠페인를 벌이고 있다.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서정약국(덕양구 행신동) 박연주(61세) 약사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절친’으로, 때로는 ‘이모’ 같은 친근함으로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제가 뭐 나서서 하는 건 없어요. 저도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그냥 ‘요즘 잘 지내는지’, ‘별일 없는지’ 물어보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이런 저의 행동이 그분들에게는 힘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정신의학과가 있는 건물에 10년간 약국을 운영하다보니 정말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의사들은 바뀌었지만 약사는 바뀌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박연주씨.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약국을 매개로 소통하고 힘이 되어주면서 ‘지역 위기센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오고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처방전을 보면 약사는 어떤 질환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지만 내색은 할 수 없다. 그래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환자에게는 한마디 말이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려고 노력한다. 2년 전쯤 20대 중반의 여성(우울증 환자)과도 그렇게 친해졌다. ‘옷이 예쁘다. 화장이 어울린다’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남자친구까지 소개시켜주는 사이가 됐다. 알바 이야기 등 근황을 물어보면서 이제는 세대를 넘어서 친구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친하게 지내서 좋은 점은 그들의 심경변화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는 점이다. 위기 상태에 빠졌을 때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동네 약사가 맡고 있는 것.

박씨가 정신질환 환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오래 전 약국을 자주 찾던 한 어르신이 명절을 앞두고 찾아와 평소와 달리 90도로 깍듯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간 후, 하루 뒤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살은 보통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나오는 행동이다. 이 일이 있고나서 주변인의 관심과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환자들이 많이 찾는 약국에서부터 진심을 다해 그들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40대 여성이었어요. 팔목을 보니 자해 흉터가 있더라고요. 이혼과 자녀와의 갈등 등 가정사가 문제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응원이었던 것 같아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경우엔 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상담을 받을 것을 권하곤 합니다.”

약국이다 보니 손님이 많아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업무 후에 통화하기도 한다.

“들어주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겠지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저를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저의 개인적인 힘든 일들을 진심을 담아 그들에게 이야기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그분들과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누구나 다들 힘든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도 힐링이 되기도 합니다.”

약사로서 약을 조제하고 전달하는 입장이지만 그는 약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이웃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라고 말한다.

“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신 할아버지처럼, 외로울 때 마지막으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면 다시는 그냥 보내지 않고 제가 껴안을 수 있게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 약국에 오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대하려 합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나한테도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요(웃음)."

사회적 편견으로 힘들어하는 정신질환자 중에는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거나 병원입원을 통해 치료받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통원치료를 한다. 증상과 질환의 경중도 다양해 전문가의 상담과 치료가 필수적이지만 이웃의 따뜻한 도움과 배려로 용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진주 사건처럼 극단적으로 치닫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보호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를 모두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지역사회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곳을 곳곳에 늘려가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목소리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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