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다다다 다른 별 학교』

『다다다 다른 별 학교』(글·그림 윤진현, 천개의바람)

 
[고양신문] 아팠다. 작년 말에 한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결국 수술을 했다. 일주일 가까이 입원하고 엊그제 퇴원을 했다. 아주 큰 수술은 아니어서 병실 생활은 할 만했다. 하루 한 번씩 팔뚝에 바늘을 찔러야 하는 혈관주사만 아니면 더 좋았을 테지만.

병실은 4인실이었다. 대각선에 계신 어르신은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목소리가 큰데다가 대부분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하셨다. 또 자꾸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부터 가족관계, 하는 일, 심지어 입원하기 전날 뭘 먹었는지도 궁금해 했다. 나는 “그냥 뭐…”하고 어물쩍 넘어갔고 내 옆 병상 환자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환자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르신은 동맥을 넓히는 시술을 하셨단다. 혈압이 높은 것을 빼면 아픈 곳은 별로 없어보였다. 유튜브 방송도 즐겨 보셨다. 소리를 크게 트는 경우도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가짜뉴스들이었다. 가끔 대통령 욕을 하고 세상을 걱정했다. 내 바로 앞에 누운 분은 그런 어르신 말에도 적당히 본질을 피하며 따뜻하게 답을 해주었다. 문병객이 뭘 사오면 꼭 모두와 나누기도 했다. 내 옆에 분은 하루 종일 커튼을 걷지 않았다. 언뜻 보이는 모습으로 짐작하건데 온종일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림책 『다다다 다른 별 학교』(글·그림 윤진현, 천개의바람)를 떠올렸다. 새 학년을 맞은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돌아가며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말한다.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생각대로 별에서, 모범생인 아이는 반듯반듯 별에서 왔다고 했다. 땅꼬마인 아이는 작아서 별, 부끄럼쟁이 아이는 숨바꼭질 별에서 왔고, 투덜투덜 화를 잘 내는 아이는 짜증나 별에서 왔는데 언제 폭발할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경고도 했다. 걱정이 많은 아이는 두근두근 별에서, 잘 우는 아이는 눈물나 별에서, 다다다 다른 별에서 왔다. 마지막에 아이들은 묻는다. “선생님은 대체 어디서 오셨어요?” (선생님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시라.)

마음씨 좋아 보이는 선생님은 다다다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과 잘 지낼 것 같지만, 나는 아니었다. 일단 그 어르신이 너무 불편했다. 같이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화 다양성에 대해 공부하면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던 나는 없었다. 어르신은 물론이고, 온종일 틀어박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친절하고 조심스런 사람도 어쩐지 불편했다. ‘더불어 같이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

수술하고 이틀째 되던 날 밤이었다. 갑자기 통증이 몰려왔다. 장기들이 제자리를 잡아가며 나타나는 현상이라지만, 너무 잦은 통증에 정신이 멍해졌다. 자가 조절장치가 달린 무통주사 버튼을 눌러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데 갑자기 어르신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집이 아파? 참지 말고 얼른 머리 위에 줄을 당겨.” 나는 줄을 당겼고 간호사가 와서 더 강한 진통제를 놔주고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어르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못했다. 질문에도 여전히 “그냥 뭐…”하고 답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같이 사는 건 어렵겠지만, 우리 집 옆의 옆 집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어르신이 ‘외로워별’에서 온 거 같았다. 외로움을 많이 타니 남에게 자기를 알리기 위해 목소리가 커지고 질문도 많아진 건 아닐까? 내 옆 병상에 있는 분은 ‘나혼자별’에서, 앞 병상 분은 ‘친절해별’에서 왔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산만해별?’ 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숨바꼭질별?’ ‘생각대로별?’ 우리는 이렇게 다다다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다.

퇴원하는 날 아침, “코드블루 코드블루 82병동” 하는 방송이 들리더니 사람들이 막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쫙 끼쳤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긴급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잠시 뒤 전해들은 이야기로 그 환자는 결국 사망했단다. 문득, 그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 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우리 병실을 한번 둘러봤다. 나와 정말 다른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박미숙 책과 도서관 대표/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퇴원수속을 마치고 나오며 인사를 했다. “건강하세요. 치료 잘 하세요.” 마음속으로 한마디 더 보탰다. ‘다다다 다른 별에서 온 우리지만, 지구별에서 만난 인연을 기억할게요.’ 진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 한마디 더. 환자의 사망을 바로 뒤로 하고 자기 마음 추스를 시간 없이 다른 환자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 잦은 죽음을 만나야 하는 나와는 다른 별에 사는 병원 의사, 간호사선생님들에게 경외를 보낸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