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5월의 어느 날, 세무서로부터 우편물 한 통이 도착했다. 오랫동안 최저임금 노동자였고, 재산도 딱히 없는 탓에 세무서와 관계 맺을 일이 많지 않은 터라 의아했다. 우편물은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안내문이었다. 근로장려금은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주는 현금이며, 실질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 제도다.

근로장려금은 2009년부터 지급이 시작되었는데,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 ‘노동빈곤층’이 등장하면서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화두가 등장했다. 근로장려금 제도 시행 후 지급대상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데, 단독가구에 대한 연령 제한 역시 두지 않음으로써 나 역시 신청자격을 얻게 된 것이었다. 신청자격이 된다는 것은 2018년의 소득이 2000만원 미만이며, 재산 역시 2억원 미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신청과 동시에 지급될 근로장려금 지급액수 역시 안내가 된다. 3개월 동안 자산심사 등의 과정을 거쳐 나에게 지급될 금액은 34만1000원이었다. 적은 소득 때문에 연말세액공제 등으로는 13월의 월급을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국가의 정책을 온 몸으로 느껴본 경험이 드문 나로서는 내심 국가의 제도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묘한 느낌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근로장려금을 신청하고 보니 이내 질문이 생겼다. 근로장려금은 정말로 노동을 ‘장려’하는가? 1년에 단 한 번, 30여만원의 근로장려금이 실질소득을 지원할 수 있는가? 올해 근로장려금은 334만 가구에게 총 3조8000억원으로 지급액을 세 배로 늘렸다는데 이것으로 노동빈곤층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가? 실질적으로 노동빈곤층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 정책의 영향을 가장 긍정적으로 받는 이들은 누구인가?

애초에 노동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영향력에 있게 하고,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노동으로 인한 소득을 얻게 되면, 그 소득만큼 기초생활보장금에서 제하거나 수급자격까지 박탈되기도 한다. 이는 분명히 노동을 금지하는 제도다. 반면, 2018년 최저임금 기준 월급은 약 157여만원으로 1년 동안 일해서 받는 연봉은 근로장려금 지급대상 기준 연 소득 2000만원보다 약 110여만원 적게 버는 액수다. 근로장려금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최저임금 노동자 그 사이를 겨냥한 정책인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취업의 문은 한없이 좁아졌고 취업경쟁에 내몰렸다. 이로써 단 한 번도 실현된 적도 없었던 ‘완전고용’이라는 꿈은 더 멀어지고 있다. 복지정책으로 모두를 끌어안지 않으면서, 기초생활수급자는 줄이고, 전일제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저임금으로 계속 일하게 하며 빈곤을 ‘관리’하는 일환이 근로장려금이지 않을까. 1년에 단 한 번, 단독가구일 때 최대 150만원까지 주어지는 근로장려금이 노동빈곤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리는 만무하다. 다만, 저임금 노동자에게 국가 차원의 소득이전 정책을 펼치니, 저임금으로 누군가를 계속 고용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용인할 뿐이다.

신지혜 노동당 대표.

우리사회의 양극화, 특히 빈곤의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찰나와 같은 빈곤완화만으로는 누구의 삶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으로, 모두의 삶을 기본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고,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금의 지옥 같은 노동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일 것이다. 또, 노동을 근거로 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근거로 두어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향한 구체적인 상상이 모두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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