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노무사의 <인사노무칼럼>

김기홍 노무법인 터전 대표

[고양신문] 의사들을 고용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장 B는 매년 병원을 대표하는 간판 전문의를 대상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옥외광고, 버스광고 등 여러 매체를 통한 마케팅 광고를 하고 있다. 그런데 병원 차원에서 홍보했던 의사가 입사한 지 1년도 안되어 인근 경쟁 병원으로 이직하면서 금전적 손실과 이미지 타격을 입은 적이 있다. 

B는 최근 의사 A를 새로 영입하면서 3년 이상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매월 급여 외 2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A 역시 개인적인 사유로 입사한지 2년 만에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병원장 B는 근로계약기간 위반을 이유로 근무하는 동안 급여 외에 추가로 지급받은 4,800만원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A는 근로기준법상 위약 예정의 금지 규정에 의거 이미 지급받은 금원을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A는 우연히 평소 원하던 자리가 나서 이직할 수밖에 없었고, 급여 외 200만원을 지급한 것도 임금과 합산해 지급받은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급여나 다름없다고 한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강제근로를 금지하기 위해 근로자가 근로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일정액의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사용자 일방의 근로계약 종료의 의사표시인 해고는 아주 어렵게 되어 있지만, 근로자 일방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고 퇴사할 자유는 비교적 폭넓게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하지만 그 약속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약속이어야 한다. 2년 전 고심하여 작성한 근로계약의 유효성을 믿었던 병원장 B의 ‘신뢰 보호’와 근로자 A의 ‘퇴직의 자유 보장’이라는 법익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직감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위약 예정 금지’ 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근로자 A는 B에게 4,800만원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병원장 B가 A와 3년의 계약기간을 정한 이유는 병원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투입한 광고의 효과가 병원의 매출 증가로 돌아오는 데는 적어도 3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사는 이제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원을 홍보하여 가치를 높여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하고, 근로자는 언제든지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이 생기면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으므로 조직에 충성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자행된 비인도적 강제노동에 대한 반성으로 1949년 입법화된 일본 노동기준법의 영향을 받아 1953년 제정된 우리 근로기준법의 내용 중에서 강제근로 금지와 관련된 일련의 규정들은 이제 우리의 현실과 어울리게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