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뉴딜사업 중심에 선 능곡4구역 공동체 ‘행주단추’

뉴타운 해제 후 오히려 막막
주민중심 마을발전에 의기투합
시 도시재생에 가장 먼저 참여
고양 5번째 도시재생지로 선정
“주민 함께하고 합의하는 사업”


수년째 이어지는 뉴타운 찬반갈등으로 황폐화된 능곡지역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그 중심에는 주민공동체 ‘행주단추(행복한 주민단지 추진위원회)’가 있다. 동네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2014년 만들어진 이 모임은 경기도 셉티드(범죄예방디자인) 시범사업을 통해 생겨난 동네커뮤니티 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잔치, 방범활동, 어르신 한글교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매주 회의를 통해 동네문제들을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뉴타운해제 주민동의 이끌어내
이곳 주민들이 처음으로 뭉친 계기는 2013년 능곡4구역 뉴타운 해제를 위해 함께 나서면서부터였다. 손영수 행주단추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뉴타운이 마냥 좋은 사업인줄만 알았는데 확인해보니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았다”며 “잘못하면 다들 손해보고 쫓겨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네사람들과 반대서류를 받으러 다녔고 결국 35%의 주민반대를 받아 시에 해제동의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주민 손으로 뉴타운을 해제시킨 능곡 4구역. 하지만 막상 해제된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능곡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박희동씨는 “당시만 해도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을 대부분 모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우리만 해제지역이 돼 낙후된 곳으로 남는 것 아닌가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즈음 주민들이 중심이 돼서 마을발전을 고민해보자는 의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것은 능곡4구역 뉴타운 해제에 앞장섰던 주민들이었다. 

“아무래도 뉴타운 반대활동을 하면서 신뢰도 쌓이고 같이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죠. 다들 수십 년 동안 이곳에 같이 살던 분들이라 동네에 대한 애착이 컸구요. 그래서 동네를 위해 무언가 해보자, 같이 뭉쳐보자,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던 거 같아요.”

주민 김종기씨의 이야기다. 김씨의 말처럼 뉴타운 해제에 앞장섰던 이들을 중심으로 이듬해 주민공동체 행주단추가 결성됐다. 소외된 주민들 간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마을문제 해결과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셉티드사업 계기로 다시 뭉쳐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경기도가 셉티드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곳 능곡4구역이 후보지 중 하나로 선정된 것. 당시 도의원이었던 송영주 행주단추 공동대표는 “사업취지나 내용으로 볼 때 뉴타운 해제지역인 능곡4구역에 가장 알맞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며 “마침 주민분들이 공동체도 만들면서 참여열의가 높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아 선정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셉티드(CPTED)란 어둡고 위험한 골목길을 밝은 디자인으로 바꿔내 범죄를 예방하는 안전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뜻한다. 하지만 물리적 변화보다 더 중요했던 부분은 동네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마포구 염리동에 사례탐방을 갔었어요. LED조명 같은 시설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주민들이 참여를 통해 동네를 변화시켜가는 모습이었어요. 아, 저게 바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셉티드 사업 이후 행주단추는 능곡시장 인근에 마련된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주민참여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자치공동체 사업에 공모해 동네 마을잔치도 열고 이곳을 고양시 평생교육센터로 지정해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교실, 공예학교, 집밥 나누기, 국수잔치, 능곡시장 메이크업 교실을 진행하는 등 그동안 해온 사업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연스럽게 행주단추에 관심을 보이는 주민들의 수도 늘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행주단추 식구가 된 이진숙씨는 “동네를 위해 이것저것 하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 참여하게 됐다”며 “뒤늦게 들어온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초기멤버인 금경혜씨는 “워낙 많은 일을 벌이다보니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동네가 바뀌는 모습들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더 컸다”고 전했다. 

행주단추는 교육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매주 회의를 통해 동네 일을 의논하고 해결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특히 쓰레기 문제해결을 위해 회의를 거쳐 지도를 그리고 시와 협의를 통해 쓰레기함 디자인과 위치를 정했던 과정은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부터는 행주단추 회의를 확대 개편해 지역 통반장과 동대표, 상인회, 동장까지 참여한 가운데 동네문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행주사랑발전소라는 이름의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 도시재생 주민대학 1등
행주단추는 고양시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가장 먼저 참여한 주민조직이기도 하다. 이곳 주민들은 2017년 경기도에서 진행한 도시재생 주민대학에 참여해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세인빌라에 거주하는 이효순씨는 “처음에는 주변 권유만 듣고 참석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동네를 변화시킬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함께 참여하게 됐다”며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과제도 내고 발표도 해야 한다고 해서 겁이 덜컥 나긴 했지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전했다. 능곡4구역이 당시 1등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의 높은 참여율과 우수한 발표내용 덕분이었다. 손영수 공동대표는 “다른 지역은 발표할 때 제한시간을 지키지 못한 반면 이효순씨는 말이 워낙 빨라서 내용을 다 이야기 했던 것이 1등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행주단추의 그간 활동과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동네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효순씨는 “도시재생대학 참여를 계기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동네일도 논하고 이웃사촌처럼 가까운 만남을 가진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4월 능곡4구역은 고양시에서 5번째로 도시재생뉴딜사업 대상지에 선정됐다. 무려 3수만에 이룬 결과였다. 앞선 두 차례 탈락의 아픔에도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주민들이 도시재생 사업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능곡4구역은 현재 행주단추를 중심으로 주민협의체 구성을 준비 중이며 현장지원센터 입주 부지까지 마련해놓은 상태다. 주민협의체의 대표를 맡게 될 손영수 공동대표는 “사업의 본격적 추진과 발맞춰 동네를 어떻게 바꿀지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주민들의 뜻과 생각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당장 세인빌라 소규모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핵심인 종상향 문제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상태다. 능곡시장 개선사업 등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에 반영된 내용들의 구체적 진행여부도 주민들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송영주 공동대표는 “지금부터라도 행정이 주민들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진척사항에 대한 논의를 함께 나눴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능곡4구역 주민들은 조만간 시장 간담회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박희동 회원은 “최대한 주민 모두가 합의하고 함께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급하게 가기보다는 착실하게 진행해 사업 이후에도 주민들이 행복하고 전국에서 가장 모범인 동네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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