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 주 바람을 쐬러 친구와 함께 강화군 교동도에 다녀왔다.

우리는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부터 올랐다. 화개산은 쉬엄쉬엄 걸어도 정상까지 삼십 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데 비록 고도는 낮아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강화도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지척거리에 펼쳐진 황해도 연백평야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화개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미세먼지가 어찌나 심한지 북한 땅이 보이질 않았다.

화개산을 내려오면 연산군이 생을 마감한 유배지가 있는데 이곳 또한 찬찬히 둘러볼 만하다. 특별히 볼 만한 구경거리는 없지만 역사적 소회에 빠져드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화개산을 벗어나 우리는 대룡시장으로 향했다. 대룡시장은 연백에서 넘어온 피난민들이 만든 시장인데 규모는 작지만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빙 둘러보고 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던 우리는 상인이 맛보기로 권하는 해바라기 씨앗을 받아서 입안에 넣었는데 어라,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었다. 그 맛에 반해서 깜짝 놀라는 우리에게 시장 상인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교동도에서 농사지은 씨앗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는 두 말 않고 해바라기 씨앗을 샀다. 우리는 덤으로 얻은 해바라기 씨앗을 먹으면서 시장을 돌아다녔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그 맛이 감탄스러웠다. 나도 해바라기 농사를 지어봤지만 해바라기 씨앗에서 어떻게 그런 맛이 나는지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우리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가서 꽤나 유명세를 탄 교동도 쌍화차를 시켜서 먹어보았다. 삼십여 년 만에 맛보는 쌍화차이다보니 과거의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맛이 굉장히 진하고 견과류도 배부르다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듬뿍 들어가 있었다. 곁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던 주인은 쌍화차에 들어간 달걀 노른자위는 다방 뒤꼍에서 직접 기르는 오골계 알이라는 자랑을 했다. 우리가 쌍화차에 견과류가 다른 데보다 듬뿍 들어간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주인은 교동도에 있는 견과류는 모두 교동도에서 농사지은 것들뿐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교동도에는 그 어떤 견과류도 외부에서 들여오지 못하며, 하다못해 강화도에서 농사지은 것도 반입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주인의 설명을 듣자 문득 해바라기 씨앗 생각이 났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교동도 사람들이 교동도에서 난 견과류만을 먹는 이유는 그 맛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맛을 떠나서 자기 고장에서 농사지은 농산물만을 먹는 그 문화가 부러웠다. 타 지역 사람들은 너무 배타적인 거 아니냐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문화가 자기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고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보였다.

몇 년 전 전라도 모처에 있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다녀온 적이 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에 앉아 밥을 먹는데 상주가 이곳의 음식은 모두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한 재료로만 만든다고 자랑을 했다. 그때에도 나는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고양시에도 가까운 시일 내에 교동도의 다방이나 전라도의 장례식장처럼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한 농산물만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문화가 생겨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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