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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6.15남북공동선언, 한반도 평화 초석 놓았다고양평화누리, 6.15공동선언 기념 명사초청 강연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9.06.17 18:32
  • 호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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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주제강연
이해동 목사, 김대중 대통령 생애 회고

 

[고양신문] 6ㆍ15 남북공동선언 19주기를 기념해 고양평화누리(이사장 나상호)가 주최하는 명사초청 강연이 14일 일산동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5월부터 이어진 고양시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강연에는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부장관)이 강사로 초청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이어 이은형 일산성당 주임신부와 이해동 목사(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가 차례로 발표를 이어갔다. 특히 이해동 목사는 같은 날 치러진 故 이희호 여사 장례를 직접 집례하고 달려온 길이기에 청중들의 감회가 더욱 깊었다.

나상호 고양평화누리 이사장은 “통일을 향해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함께 손잡고 가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는 꿈을 가져보자”며 인사를 전했다. 이재준 고양시장, 이윤승 시의회의장을 비롯해 120여 명의 참석자가 자리를 가득 메운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615 공동선언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한반도는 일찍부터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히는 접점’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의 딜레마를 반복해서 겪고 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과 분단, 동서냉전,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은 지금도 이어진다.

오늘날 세계질서의 양강으로 급부상한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장악하려는 ‘일대일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역시 세계 패권국가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 등 태평양-인도양의 해양 대국을 연결하는 동맹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분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점차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딜레마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의 사드 설치와 이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조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1991년 소련 붕괴 후 미국이 단독 패권국가의 자리를 누렸지만, 2000년대 들어 9ㆍ11테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위상이 추락하고 만다. 그 사이 중국이 급격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외교적으로도 공세적 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두 나라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의의와 계승을 주제로 강연을 펼친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이번에는 북한 핵문제의 뿌리를 짚어보자. 1991년 소련 붕괴 후 외교와 경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사활을 걸고 핵 개발에 매달리는 선택을 한다. 이에 미국은 30여 년 가까이 북한의 고립을 강화하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핵개발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이제 미국이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해법은 북한 정권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고, 대화와 인센티브를 통해 핵 개발에 대한 동기를 약화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트럼프 정부가 이러한 전환전 대북 전략을 펴고 있다. 비록 하노이 2차 회담이 결렬됐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은 여전히 긍정적으로 평할 수 있다.  

북한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북한의 현 경제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 내수 거래의 80%가 시장 시스템에서 이뤄질 정도로 북한사회는 이미 시장경제, 개방경제 단계로 들어섰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무역의 비중도 48%에 이를 정도로 개방화를 추진하고 있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 역시 외부 적대세력에 의한 내부결속에 기대 정통성을 유지하기는 더 이상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보와 경제적 보상이 보장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제스처를 반복해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는 어떤 노선이 북한의 핵 포기 확률을 높이는 방향인지를 잘 판단해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미국 역시 북한에 대한 지원을 말로만 떠들지 말고, 핵 협상과 동시에 북한 경제 발전을 견인할 상설협의체를 만들고, 경제시찰단을 초청하고, 스포츠와 문화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자국 이익에 냉정한 4대 열강 사이에선 남과 북의 통일을 원치 않는 원심력이 작용한다. 우리의 외교 전략은 이러한 원심력을 최대한 낮추는 일에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각 나라에게 “남과 북의 통일이 당신들에게도 결코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설득해내야 한다.


반대로 남과 북 사이에서는 구심력을 강화해야 한다. 자꾸 만나고 소통하고 접촉점을 늘려 남과 북의 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 힘을 키워야 한다.

6ㆍ15 공동선언 19주년을 맞았다. 국제외교적으로 원심력을 약화하고, 내부적으로 남과 북의 구심력을 강화하는 대북정책을 쓴 첫 대통령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다. 당시 클린턴은 김대중 대통령에서 대북문제의 운전대를 맡기려 했고, 김대중-오붙이 선언을 이끌어낸 것도 당시의 일이다. 또한 남과 북의 정상이 체결한 최초의 합의문인 6ㆍ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며 구심력을 단단히 한 대통령도 바로 김대중이다.

6ㆍ15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의 구심력 강화를 통해 통일과 평화를 추구하자는 방향을 담은, 남북 최고지도자 간의 최초의 합의다. 이 선언을 계기로 통일은 갑자기 이뤄지는 절차가 아니라, 서서히 추진되는 과정으로 천명됐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6ㆍ15남북공동선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잘 계승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를 들려 준 일산성당 남성중창단.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도 함께 기억해야
▲이은형 일산성당 주임신부
        
김대중 대통령의 진가와 위대함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절실하게 실감된다. 6ㆍ15공동선언문은 남과 북의 화해의 기틀을 마련한 첫 선언문으로 너무도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공동선언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회고해보면, 당시 클린턴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올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의 동방전문가들도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코리아에 냉전을 중단시킬 계기를 선물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존재는 한국인에게 커다란 행운”이라고 극찬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6ㆍ15공동선언에 앞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룬 시기가 바로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1991년 남과 북이 UN에 개별 가입을 하며 각각 독립된 국가임을 인정했다. 또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한반도 통일의 방향을 도출해낸 것도 노태우 정권이었다.

당시 골자인 ‘화해협력 증진-남북 연합-완전한 의미의 통일’ 단계로 나아가는 로드맵은 이후 한반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담겼다. 이러한 방향 설계를 시작한 정권이 보수정권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통일 자체를 왜곡하고 매도하는 오늘날의 현실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념의 좌·우를 떠나 전 국민적 화합으로 6ㆍ15공동선언의 유지를 이어가기를 바란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을 재조명한 이은형 일산성당 주임신부(사진 왼쪽).



민족과 민주주의 가치 지킨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
▲이해동 목사(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

박정희 정권 하에서 민주구국선언 등 민주화 투쟁을 함께 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감옥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이희호 여사 역시 김 대통령과 평생의 동지였다. 동지는 뜻을 함께 하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함께 바라 본 목적지는 진실과 정의, 사랑과 평화가 실현된 ‘하나님 나라’였다.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거칠고 험한 길을 걸어간 분들이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다. 이번 장례를 계기로 이희호 여사의 참모습이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허울을 씌워 그분을 매도한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 진영에서도 김 대통령을 ‘수정주의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5ㆍ18의 주역 전두환을 용서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원수 사랑을 실천한 신앙인이었다. 정치 보복의 사슬을 스스로가 끊어버리려 한 것이다.     

6ㆍ15남북공동선언을 돌아보며, 김대중 대통령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을 다시 회고한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정당하고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주어지는 날이,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날이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아름다운 삶을 회고한 이해동 목사.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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