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라딘 나바키, 레바논, 2018)

 

[고양신문] 2018년 71회 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은 최연소 배우가 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화제 측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을 받을 것이라는 언급은 없었지만, 영화제 끝까지 머물러 달라는 귀띔을 해주었고 영화 <가버나움>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레바논 출신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 201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까지 오른 <가버나움>은 한국에서도 올해 예술영화부문 박스오피스 6위에 오르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의 주된 내용인 난민 이야기는 작년에 한국을 강타한 뉴스 중 가장 많은 기사를 생성했던 이슈가 아닐까 싶다. 일반기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짜뉴스가 생성됐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난민 관련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기독교였다는 소식에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국교회는 사랑과 평화의 근원이 되는 예수의 가르침을 설교하면서도 정작 나그네에게 환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소수 집단이 기독교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정서는 일반 대중과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인류가 체험한 정서 중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것이다. 특히 모르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강력하다. 이 두려움의 감정이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 공포영화 장르인데, 지난해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을 향해 인터넷상에서 많은 한국인이 보인 반응은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가버나움>은 공포 장르의 영화라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이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 상영되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난민’의 삶을 거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는 주인공 자인의 저항이 너무 생경해서 관객의 감정을 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관객이 영화 내부로 충분히 들어오지 못하고 외부에서 겉돌다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정작 마음을 닫아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타자와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양파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듯 12살 소년 자인의 시선을 통해 관객을 천천히 극복된다.

자인은 출생기록이 없는 아이다. 지독한 가난과 부모의 자존심은 자녀들을 버려두며 무관심의 자리로 밀어냈고 자인은 그런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초등학생인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동네 아저씨 그리고 딸을 팔아서라도 가난을 극복하려는 부모에게 분노를 느낀 자인은 동생을 빼앗긴 뒤 집에서 뛰쳐나가 레바논 베이루트 거리를 헤매며 척박한 삶을 이어간다. 관객은 부모 없이 보호받지 못하고 위험에 내몰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난민’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난민’이 존재하지 않으며 난민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도 없다. 모든 난민은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가출의 상황에 내몰린 소년 자인의 삶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과연 ‘난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가난, 아동 학대 및 불법 노동, 조혼 등 억압받는 어린이들의 참담한 현실과 그 속에서 꿈틀대는 원초적인 생명의 힘을 보여준다.

왜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가버나움>이라고 했을까? 1세기 예수가 살던 당시 인구 1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가버나움에는 세관이 있었으며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예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릴 만큼 예수의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안드레가 살았던 곳이며 세리 마태가 부름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버나움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이라는 것이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기도 했고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버나움은 예수의 기적과 치유를 그렇게 많이 경험하고서도 결국 회개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자 예수는 가버나움이 완전히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다.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마 11:23-24)

강도영 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우리는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인 가버나움을 향한 예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인 레바논을 포함하여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아이들과 같이 가장 약한 자들을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어디서나 성인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충분한 인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늘의 지혜가 드러난다는 내용은 영화가 주는 울림과 같다. 영화를 만든 라딘 라바키 감독은 영화 <가버나움>과 같은 영화의 지속적인 목소리를 통해서만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감상은 모두 조금씩 다르더라도 영화가 외치는 목소리에 잠시 귀 기울일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작은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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