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릉 비공개지역 답사

일제, 태실과 왕자 공주묘 등
전국각지 명당의 조선왕조 묘
파헤쳐서 한곳으로 집단 매장

문화재청·서삼릉태실연구소
9-10월에도 비공개지역 답사 진행

 


[고양신문] 조선 왕실의 태실 54기가 이장돼 있는 태실을 비롯한 서삼릉 미공개 지역이 지난달 29일 빗장을 열고 시민들을 맞았다. 문화재청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는 지난달 29일 서삼릉 비공개지역 답사 프로그램 ‘서삼릉 태(胎) 생명의 시작’을 진행했다. 고양시와 서삼릉태실연구소(소장 김득환)가 협력한 이날 행사에는 3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은 김성호 한국선사문화연구소장이 서삼릉 비공개지역의 비극적 역사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들려줬다.

“서삼릉 비공개지역은 일제가 1925년부터 1929년까지 4년 동안 전국의 명당 자리에 산재한 조선왕조의 태실(국왕 21기, 왕자녀 31기)과 왕자, 공주, 옹주, 후궁묘까지 파헤쳐 집단 매장해 놓은 곳으로서, 조선왕실의 정통성을 폄훼하기 위한 역사 파괴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하에서 연이은 비극을 겪은 서삼릉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김성호 한국선사문화연구소장.


김 소장은 생명존중과 왕조 번영에 대한 염원을 담아 격식과 규모를 갖춰 봉안됐던 태실은 강제 이장 과정에서 훼손됐고, 좁은 영역 안에 마치 서양식 공동묘지와 같은 비석군이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70년대에 군사정권에 의해 능역이 골프장과 종마목장, 젖소개량사업소 등으로 분할된 안타까운 근대사도 짚었다.

“당시 시민들을 중심으로 서삼릉을 되살리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땅 한평 사기 운동이 펼쳐졌지만 국가와 거대 기관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태실과 태항아리의 문화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김득환 서삼릉태실연구소장.


이어 태실 앞 잔디마당에서 서삼릉 비공개지역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시청한 후 서삼릉태실연구소를 운영하며 태실 연구에 앞장서 온 김득환 소장이 정교하게 복제된 태조와 세종, 정조 임금의 태항아리를 방문객들에게 소개했다. 김 소장은 “시대별로 다른 형태로 제작된 태항아리는 조선의 문화예술 역량을 고스란히 담은 명품이지만, 일제와 미군 등에 의해 많은 숫자가 도굴되고 밀반출됐다”고 설명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답사 기회를 얻은 탐방객들은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이 나열되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설명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왕자.왕녀묘를 둘러보는 참가자들.


태실을 둘러본 방문객들은 고양시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비공개 지역 안쪽 왕자·왕녀묘, 숙의묘(후궁묘), 빈·귀인묘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 안내문에는 각각의 묘가 원래 자리하고 있었던 초장지의 위치가 기록돼 있는데, 서울은 물론 포천과 남양주 등 경기도 전역에서 묘역을 집단 이장한 사실을 살필 수 있었다. 강제로 이장된 묘들은 자그마치 50기가 넘는다. 참가자들은 미지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롭게 마주한 역사적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비공개지역 가장 안쪽에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잠들어 있는 회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성종과 인수대비에 의해 폐위된 윤씨는 연산군 즉위 후 왕후로 복위돼 ‘회릉’이라는 능호를 받기도 했지만, 연산군이 폐위되며 다시 무덤이 ‘회묘’로 격하된 파란만장한 역사의 주인공이다. 덕분에 ‘묘’로서는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규모를 갖췄다는 설명이 따른다. 원래 서울 동대문구에 있었다는 회묘의 한 석물 뒤편에는 한국전쟁 때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거대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는 회묘.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다.


아들과 함께 탐방행사에 참가한 한 시민은 “서삼릉 비공개지역은 자랑스러운 역사와 슬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가 함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감동을 전했다. 아울러 “이렇게 중요한 곳이 여전히 비공개지역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개방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비공개지역의 개방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풀어야 할 선결 과제들이 있어 보인다. 앞서 밝혔듯 서삼릉 능역이 분할돼 있어 지금의 형태로는 개방과 관리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분간은 간간이 진행되는 비공개지역 개방 프로그램 정보를 챙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행사를 진행한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 관계자는 “오늘 행사를 시작으로 9월과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도 서삼릉 비공개지역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삼릉 태실의 모습. 전국 명당자리에 산재해 있던 조선왕조의 태실을 강제 이장해 서양식 공동묘지처럼 조성해 놓았다.
고양시 문화해설사로부터 조선왕조의 태봉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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