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강한 가좌 덕이 구산동이 하나의 공동체

조동호 송산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언제나 서글서글이다. 멋쟁이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다.

구산3리가 고향인 송포 토박이
“아마 우리가 고양시에서 벼농사를 제일 많이 지을 거예요. 350마지기로 7만여 평이 되는데 지역 선배 서경주 씨와 공동으로 하고 있어요. 농번기가 시작되는 봄이 오면 제일 바쁘죠. 8,000장의 모판을 담고 1주일 동안 모내기를 하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요. 오랫동안 해온 농사일이라 어렵진 않죠, 나이가 들어 좀 힘들어지긴 해도…. (웃음)” 

대농의 농사꾼으로, 인구 5만1000여 명의 주민자치위원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갠 조동호 송산동 주민자치위원장을 송포농협 가좌지점에서 만났다. 갈색 중절모에 명품 선글라스를 걸친 스타일은 농촌보다는 도시가 더 어울려 보였다.
“제가 3남 6녀 9남매 중 넷째예요. 31살 때인 1986년 겨울 아버님이 60세에 돌아가셨고 이듬해인 1987년 여름 어머니가 57세로 세상과 이별했어요. 아래로 여동생 넷이 있었는데 막막했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아픔이 거름이 됐어요.”

조동호 위원장 집 앞에서 있었던 사랑의 감자나누기에 지역민들이 동참했다.

송포면 구산리가 고향인 그는 1957년생 닭띠로 10월생이다. 가을 남자다. 구산리는 9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아직도 장월부락으로 불리는, 파주 심학산이 가까운 마을이다. 구산리는 1990년 9월 10일 한강 재방 둑이 터져 물난리가 나기 전만 해도 깔끔한 동네였다. 당시 고양군은 어디나 그랬지만 물과 공기가 깨끗했다. 한강이 인접한 동네로 석양이 아름답기도 했다. 지금도 정 많고 살기 좋은 동네지만 계획 없는 개발로 마을 지형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수해 겪으면서 마을일 나서 
“90년 마을 수해 때는 모든 집의 지붕 위까지 물이 찼어요. 마을이 사라졌고 차디찬 물만 보였죠. 집에서 가지고 나온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막막함뿐이었죠”라며 29년 전을 떠올렸다. “슬레이트 지붕이라도 보였으면 그나마 집이 어딘지 위치를 알겠는데… 아무튼 물에 꼴딱 잠기며 희망도 잠겼죠. 마을 전체가 그랬으니 자포자기 하 듯 먼 산 아닌 먼 강만 쳐다봤어요”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날 대홍수로 주민들은 마을 둑 위를 걸어 제일 가까운 심학초등학교로 대피했다. 손발이 묶인 듯한 참담함 속에서 무언가 해야만 했다. 그는 새마을지도자로 나서 구호물자 일을 맡았다.
송산동은 지역 대부분이 논과 밭 그리고 야산이 멀리 보이는 동네였다. 일산서구에서 제일 넓고 긴 행정구역으로 도시와 농촌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역이다. “법정동인 가좌동 덕이동 구산동이 속해 있고 인구가 5만1000여 명인 작지 않은 동네예요. 덕이동은 아파트와 사업장이 많고 가좌동은 아파트, 구산동은 대부분 농업지역이죠. 개성이 강한 동네라 매력적이에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바라기 심기와 감자캐기, 배추나눔으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나눔을 펼치는 송산동 주민자치위원회. 26명의 위원은 각자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분과별로 봉사를 하고 있다. 그 중심에서 조동호 위원장이 균형의 추를 잡고 있다. 2016년 12월 주민자치위원 장이 된 그는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하자’라는 신념으로 송산동 7개 직능 단체와 행정복지센터와의 조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역기업과 지역민 관심 필요”
조동호 위원장은 부인 이채순 씨와 아들이 함께 살고 있으며 딸 둘은 출가했다. 1남 3녀의 자녀들은 조 위원장의 송포초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그가 지역에 애착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다. 올해 백송문화축제도 어떻게든 개최해보려 노력하는 이유도 그렇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15회째 이어온 백송문화축제가 올핸 개최가 불투명한 상태다. 예산 문제 때문이다.
“지역기업과 지역민들의 관심이 더해지면 가능할 것으로 믿어요. 지역민들과 만들어온 마을축제인 만큼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할 겁니다.”라며 송산동 공동체의 힘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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