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결 따라 역사의 흔적 따라,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3) 창릉천 스케치

■ 연재 순서

(1) 공릉천 상 (2) 공릉천 하
(3) 창릉천 상 (4) 창릉천 중 (5) 창릉천 하
(6) 도촌천 (7) 장월평천 (8) 대장천 (9) 성사천 (10) 벽제천


전 구간 고양땅으로 흐르는 소중한 물줄기
구간별로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며
지축·삼송·원흥·창릉 택지개발지 두루 지나
사람 손길 닿아야 유지되는 ‘준 인공 하천’
도심속 하천의 의미와 기능 고민해야

 


[고양신문] 지난 연재에서 공릉천을 ‘고양의 대표 하천’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 타이틀은 어쩌면 창릉천(昌陵川)에게 달아주는 게 더 정당할지도 모른다. 고양시 구간만을 보자면 창릉천은 공릉천보다도 더 긴 22km의 유로 연장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북한산 상장봉 아래 계곡부터 종착점인 행주동까지 온전히 고양땅을 딛고 흐르는 하천이 바로 창릉천이기 때문이다.
창릉천의 이름은 서오릉 중 하나인 창릉(昌陵, 조선 8대 예종의 능)에서 따왔다. 창릉천도 꽤 많은 지천들을 거느리고 있다. 지천으로는 지방하천인 북한천·순창천과 중고개천부터 도내천까지 무려 19개의 소하천을 거느리고 있다.
현재 창릉천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구간별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창릉천의 다양한 얼굴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준다. 도시화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하천’은 무엇일까.

편의상 창릉천을 6개 구간으로 나눠 나들이길을 스케치하려 한다. ▲1구간은 북한산계곡부터 입곡삼거리 백운아파트까지다. ▲2구간은 은평뉴타운과 택지개발이 진행 중인 지축동 사이를 지나 통일로와 교차하는 덕수교까지다. ▲3구간은 삼송신도시를 관통해 삼송교에 이르는 구간이며 ▲4구간은 원흥 도래울마을 앞을 흘러 덕양로와 만나는 지점까지다. ▲5구간은 화전교와 화도교를 지나 봉대산 기슭에 다다르는 구간이고 ▲마지막 6구간은 강매석교와 강고산 마을을 지나 행주산성 아래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구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밤골계곡과 북한산계곡이 합류하는 북한천다리를 출발점 삼아 창릉천 도보 답사를 시작한다.
 

큰길을 따라 늘어선 식당가 뒤편으로 작은 개울처럼 흐르는 창릉천.

(1) 큰 길 뒤편으로 흐르는 소박한 개울

코앞에서 올려다 본 북한산의 산세가 위풍당당하다. 식당들이 즐비한 큰길 안쪽으로 매미골과 사곡마을 등을 지나 흐르는 창릉천은 시골의 작은 개울 같다. 흥국사 아래 사곡마을은 몇 해 사이 몰라보게 변했다. 신축 빌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천변마을의 한가로운 정취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입곡삼거리 부근에 이르자 가늘게 흐르던 물줄기가 거의 말라버렸다. 물이 얼마 남지 않은 웅덩이에 십여 마리의 백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지축지구 모습.

(2) 아무도 손대지 않는 메마른 하천

은평뉴타운은 이어지지만, 이상하게도 창릉천 둔치를 친수공간으로 꾸며놓지 않았다. 아예 둑방에 높은 둔덕을 쌓고, 군데군데 초소를 배치했다. 마치 창릉천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한 모양새다. 군 작전상의 이유가 있겠지만,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고양시쪽 지축동은 택지개발로 10여 년 가까이 대규모 공사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창릉천은 그야말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공간으로 방치되고 있다. 수량도 끊겨 메마른 바닥이 드러났고, 둔치에는 생태교란종 식물들이 무성하다. 물기가 마르니 양버즘나무 같은 육상의 키 큰 나무가 풍채 좋게 뿌리를 내린 곳도 있다. 십대 시절을 지축동에서 보낸 기자로서는 여름이면 싸릿말 다리 아래서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어른들은 천렵을 하던 추억 속 풍경이 그립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풍성했던 창릉천 수량이 왜 줄어든 것일까. 생태지킴이로 활동하는 이영강씨는 은평뉴타운이 개발되며 창릉천으로 흘러 들어와야 할 우수가 차집관로로 모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파트단지 사이를 흐르는 창릉천.

(3) 풍성해진 수량, 잘 조성된 친수공간

덕수교를 지나면 반전이 일어난다. 자전거길과 산책로, 벤치와 수풀이 조화롭게 배치된 친수공간이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수량이 넉넉해져 징검다리 사이로 물고기가 헤엄치고,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갈대와 부들이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어찌된 일일까. 알고 보니 삼송수질복원센터에서 정화처리한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덕수교 인근에서 창릉천으로 방류하고 있었다. 시 하수행정과에 알아보니 하루에 방류하는 물의 양이 평균 7000~8000톤에 이른다고 한다.
3구간 끄트머리에는 창릉천 나들이의 오아시스 덕수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우기에 물을 가두어두는 저류지로 설계된 곳이지만, 수생식물이 풍성하고 관찰데크가 설치된 아름다운 습지생태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근 창릉천 솔바람 에코센터에서는 신도동주민자치위원회와 에코코리아가 협력해 생태교육을 진행한다.
 

원흥 저류지에 조성된 습지생태공원.

(4) 관심과 정비가 부족한 도래울 구간

원흥지구 도래울마을 구간은 친수공간 정비도 주민들의 이용도도 아직은 삼송구간에 못 미친다. 오히려 제방 위쪽으로 자전거도로와 산책 공원을 조성해놓았다.
나들이 내내 둔치와 경사면의 초목을 포크레인을 이용해 깔끔하게 밀어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한다. 도래울마을 앞에서는 아예 운동장만한 흙바닥이 드러났다. 일 년에 한 번, 장마철을 앞두고 천변 초목을 일망타진하는 방식의 치수정책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도래울마을에도 저류지를 이용한 작은 생태공원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끌었던 석탄 이신의 장군을 기리는 장대비와 누각(의장대)도 만날 수 있다.
 

화도교 부근 풍경. 유속이 느려지며 부유식물이 수면을 덮어가고 있다.

(5) 단속 손길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

원흥지구를 지나면 창릉천은 또 한번 ‘방치지대’를 만난다. 제2화전교와 화도교 아래로 걷다 보면 생태교란종이 무서운 기세로 퍼져있는 모습과 생활쓰레기가 투기된 장면을 연이어 목격해야 한다. 둑길로 올라와 걷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근 레미콘 공장과 창고 등을 드나드는 커다란 덤프트럭이 엄청난 먼지를 발산하며 내달리기 때문이다. 둔치에 펼쳐진 불법경작지의 크기는 소규모 텃밭의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그레이벨트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그린벨트 지역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천변 서편은 3기 창릉신도시에 포함된 지역이다. 도시계획 지도를 살펴보면 창릉천을 따라 도심형 자연공원이 꾸며질 것으로 보인다.
 

봉대산 부근 갈대밭 옆 자전거길을 달리는 라이더들.

(6) ‘생태적 인공 하천’을 향한 고민

화도교를 지난 후 창릉천은 하천 하구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한다. 갈대밭을 따라 빠르게 달리는 라이더들의 발놀림이 경쾌하다. 자전거길은 직진으로 이어지고, 누리길 코스는 다리를 건너 강매석교로 향한다.
강매석교와 강고산 마을을 지나면 긴 둑방길이 이어진다. 몇 해 전부터 강 둔치를 갈아엎고 가을에 코스모스 축제를 열고 있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방치된 천변둔치를 관광코스로 변모시켰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생태전문가들은 적잖은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긴 구간을 달려온 창릉천은 덕양산 기슭을 돌아 비로소 한강과 물길을 섞는다. 긴 길을 흘러오는 동안 지축·삼송·원흥지구, 그리고 창릉신도시까지 덕양구의 대표적 택지개발지를 두루 지나왔다.
창릉천은 현재 물을 인위적으로 공급해주지 않으면 수량 확보가 곤란하고, 천변 둔치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훼손과 불균형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직면했다. 말하자면 ‘준 인공하천’인 셈이다. 이는 창릉천뿐 아니라,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생활공간에 포섭된 모든 하천들이 공통으로 마주한 현실이리라.
창릉천이 준 인공하천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과제는 명확해진다. 어떻게 하면 창릉천을 생명의 풍요로움과 친수공간으로서의 쾌적함을 함께 지닌, 괜찮은 ‘생태적 인공 하천’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함께 고민을 시작해보자.
(※ 창릉천의 생태적 과제는 다음회에 계속)

■ 도움말 : 이중희·이영강 더불어성사천 생태활동가

 

창릉천이 시작되는 북한산계곡.
입곡삼거리 부근 둑방 위의 대규모 불법경작지 모습.

 

은평뉴타운 창릉천 둑방을 따라 군데군데 설치된 군사 초소.
천변 카페가 하나 둘 문을 열고 있는 삼송역 뒤편 주택가 둑방길.
물길과 자전거길, 산책로가 나란히 이어진 창릉천 삼송신도시 구간.

 

덕수생태공원 옆에 자리한 창릉천 솔바람 에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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