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 <높빛시론>

최창의 행복한미래교육포럼대표

[고양신문] 요즘 교육계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자사고 논란을 보면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리 고등학교 교육은 내가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리도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내가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는 지금부터 32년 전이다. 비평준화 시기에 나는 그 지역에서 명문고라 자부하는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년 내내 달마다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알리는 성적표와 대학입시 공부만 앞세우는 학교 생활이 지겹기만 했다. 행복한 기억이라곤 거의 없는 고등학교 시절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내가 졸업한 뒤 그 지역의 고등학교들은 수년 전부터 시 단위를 중심으로 고교평준화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내가 다닌 사립고등학교는 명문고를 유지한답시고 자사고로 전환하였으니 내 후배들은 여전히 극심한 입시 놀음에 시달리고 있을 게 뻔하다. 30년이 넘었지만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께 자주 들었던 말들이 기억난다. 명문고 역사를 들먹이며 졸업생 기수별로 서울대 들어간 인원이 몇 명이었느니 출세한 선배들이 누구였느니 하는 자랑들이다. 그 선배들 일화 가운데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산고 이사장인 수학 참고서의 저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자랑찬 입시 신화들은 내 인생에 별다른 본보기나 자극도 되지 못했고 오히려 잘못된 학벌 의식에서 헤매게 했을 뿐이다.

문제는 이처럼 과거 비평준화 시기의 서열화된 고등학교보다 더 불량하게 변질된 게 현재의 자사고와 특목고 체제라는 것이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알다시피 고등학교 입시 시기를 달리해 전기에 입학생을 모집한다. 그래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맨 먼저 싹쓸이해간다. 대학입시 성적이 좋은 가장 큰 요인도 이처럼 성적 우수생들을 선점하여 피나는 경쟁을 시킨 덕택이다. 이들 고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25명 전후로 유지하고 선택 과목을 다양하게 운영한다. 또 대부분 학교가 기숙사를 갖추어 밤늦게까지 자율보충 학습을 한다. 그래서 교육청 지원이 없는 자사고 경우는 일반고의 3배가량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 학생의 성적과 부모의 재정능력이 결합되어 그들만이 따로 모여 일반고와 다른 특권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기본은 아이들이 평등한 교육 조건에서 출발하고 차별없이 고루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가, 영어를 잘 하는 아이와 체육을 잘 하는 아이가 한 교실에서 협력하여 배우고 나누어야 한다. 그런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약한 사람을 돕는 인성을 기를 수 있다. 알려진 것처럼 교육 선진국인 핀란드나 독일은 학교 서열이나 아이들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잘 하는 분야가 다른 아이들끼리 함께 모둠을 지어 학습하면서 서로 배우고 일러 준다. 그래서 특별한 학교가 없는 핀란드에서 가장 좋은 학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라고 한다. 내가 직접 다녀 본 경험으로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고등학교 생활은 우리와 사뭇 달랐다. 학교간 서열을 가르지 않고 차별없는 교육을 통해 개인의 창의성과 민주시민의 공동체성을 키우는 데 중심을 두었다.

입시 성적 1점차로 대학 서열을 가르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부모들이 특별한 환경을 가진 고등학교를 선택하려는 욕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내 돈 갖고 좋은 학교 가겠다는데 웬 참견이냐며 자사고 평가를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것은 몰염치하다. 내 아이만 특권 교육을 받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심이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를 해치고 우리 아이들까지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는 이 때 미래교육의 길을 멀리 내다봤으면 좋겠다. 일부 소수 아이들만을 위한 특권 교육을 폐기하고 다수의 일반계 고교를 살려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잠재성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자사고뿐만 아니라 과학고, 외고, 국제고 같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도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회의가 주관하여 폭넓은 국민 토론회를 통한 합의 과정을 추진하면 좋겠다. 더 이상 우리 세대가 겪은 서열화된 고등학교 체제의 일그러진 교육 유산을 후대들에게까지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