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의 호수공원 통신>

호수공원 텃밭정원 안에서 자라는 자두나무. <사진=김윤용>

 
[고양신문] 일본 아베 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처를 취하자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운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일본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보복성 수출 규제를 넘어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의 경제 보복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 일본군 ‘위안부’ 협약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일본 헌법을 개정해 전쟁국가로 나아가려는 의도에서 개헌 통과선 확보를 위한 일본 내 참의원 선거용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고 장기적인 그림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턱밑까지 따라잡은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견제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북평화를 통한 한반도 통일 대비 등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을 비교합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은 대량 학살과 침략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과 배상, 침략 역사에 대한 교육 등에서 상호 비교가 불가능한 국가입니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침략국에 대한 진정한 사과도 없었으며, 전쟁 피해자에 대해 배상은커녕 반복적으로 모욕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범기인 욱일승천기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요. 심지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이유로 자신들이 전쟁 피해자인 것처럼 코스프레까지 합니다.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 1910년 한일합병조약으로 27대 519년을 유지한 왕국을 일본제국에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경술국치일로 부르는 1910년 8월 29일이 조약 공포일입니다. 이완용 등 매국노를 내세워 체결한 강제조약이었습니다.

순종 아버지인 고종은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에 올랐습니다. 고종 황제는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뒤, 1907년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했습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입니다.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상을 알리려 했지만, 오히려 이 일로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4월쯤 피는 자두나무 꽃. <사진=김윤용>


조선 왕조는 오얏나무 이(李) 씨가 왕위를 계승한 왕조입니다. 조선왕조는 오얏나무 꽃을 왕실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대한제국에서는 오얏나무 꽃을 왕실 상징으로 썼습니다. 덕수궁 석조전 등에 새겨놓은 이화문(李花紋)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각종 황실 생활용품에도 자두나무 꽃을 상징으로 썼습니다. 자두나무 꽃잎 5개와 꽃잎마다 꽃술 3개를 형상화했습니다.

오얏나무가 바로 재래종 자두나무입니다. 현재의 자두나무는 개량종 서양자두나무이고, 재래종 자두나무인 오얏나무 열매는 강원도 홍천 등 일부 지방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옛말에 의심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썼던 구절이 있습니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는 말입니다. 한때 오얏을 배나무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배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라.”고 잘못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자두나무는 10미터까지 자라는 중간키나무로 4월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은 보통 3개씩 모여 핍니다. 꽃잎은 5개이고 열매는 7월에 황색이나 자주색으로 익습니다. 열매가 자주색이고 복숭아를 닮아 자도(紫桃)나무로 부르다가 자두나무란 이름이 왔습니다. 호수공원 전통정원 옆 텃밭정원에 자두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순종 황후가 탔던 어차. <사진=김윤용>

 

어차 문에 달린 황금빛 오얏꽃문양.<사진=김윤용>

 

자두나무 열매.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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