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레노띠 침대&한양문고 ‘한달에 한 번 진짜인문학’
김용관 작가 ‘수학을 품은 우리말’ 강연

 

한양문고에서 진행된 '한달에 한번 진짜인문학' 8월 강사로 초청돼 강연을 펼친 김용관 작가. <사진제공=정경화>


[고양신문] 알뜨레노띠 침대와 한양문고 주엽점이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번 진짜인문학’ 8월의 강사로 수학저술가이자 인문학자인 김용관 작가가 초청돼 ‘수학을 품은 우리말’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6일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김용관 작가는 먼저 수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말 단어들을 소개한 후, 후반부에는 한글 창제의 비밀 속에 숨은 수학적 원리에 대한 작가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수학 전공자가 아닌 김용관 작가는 뒤늦게 수학의 매력에 빠져 ‘수학자’가 아닌 ‘수학짜’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고양의 이웃이다. 수학자가 수학 이론만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수학짜는 수학을 도구 삼아 세상을 공부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웃들과 재미있게 노는 존재라는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수냐의 수학영화관』, 『돈키호테는 수학 때문에 미쳤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 등 그가 저술한 책 목록들은 그의 다채로운 관심사와 사고의 전개방식을 방증해준다. 특히 최근에는 『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드노니』(평사리 刊)와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생각의길 刊)을 연이어 선보이며, 한글과 수학, 우리말과 수학 사이의 넘나듦을 탐구하고 있다. 이날 강의 역시 이 두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올해 들어 가장 무더웠던 날 저녁에 열린 강의였지만, 많은 청중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수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강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강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다.
 


‘다름’을 품으면 새로움이 탄생한다

오늘 강의의 제목이 ‘수학을 품은 우리말’이다. ‘품는다’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B=C로 표기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더하거나 만나거나 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덧셈은 양쪽이 질적으로 동일한 경우라면, 품기(∪)는 양쪽이 질적으로 다른 경우에 적용된다. 서로 다른 뭔가가 뭔가를 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자랑하는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가 지은 건물들을 보라. 건축이 생태주의, 자연주의를 품었을 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답고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이소라의 노래 ‘신청곡’도 마찬가지다. 짙은 서정의 가수 이소라가 다른 뮤지션의 ‘랩’을 품으니 전혀 새로운 음악세계가 만들어졌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살며 ‘품어온’ 수많은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새롭게 읽힌다.

 

수학을 만나 풍성해진 우리 말

최근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이라는 책을 냈다. 우리나라 말 중 수학과 관련된 말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이 수학적 맥락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가지 살펴보자.

▲‘태반이 합격했다’의 태반은 대체 얼마를 말할까. 원래 태반은 분수 ⅔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옛 사람들은 자주 사용하는 분수에 약반, 소반, 중반 등의 명칭을 각각 따로 붙여줬던 것이다. ▲하룻강아지는 태어난지 하루 된 강아지가 아니고, 1년 된 강아지를 말한다. 동물의 나이 1살을 지칭하는 ‘하릅’이 하룻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참’은 얼마나 먼 거리일까.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인 25리, 10km에 해당하는 거리다. 이렇듯 수학적 단위와 개념에서 만들어진 우리말을 모으니 책 한권이 됐다.

 

한글 우수성의 핵심은 독특한 결합 방식

『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드노니』는 ‘도대체 한글이 왜 우수한 글일까?’라는 엉뚱한 질문에서 시작된 책이다. 모두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라고 이야기하는데, 뜻밖에도 그 우수성의 근거를 명쾌히 설명하는 책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한글은 형태나 조합 면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문자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한자의 영향권에 있었고, 인도의 범자(산스크리트어)가 한글의 모태가 됐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몽골의 파스파 문자는 한글보다 200년 앞선 표음문자다. 다민족을 정복한 몽골제국이 다양한 언어를 음성으로 기록하기 위해 표음문자를 만든 것인데, 형태적으로 한글과 유사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글만이 가진 독창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것이 구성요소에 있지 않고, 구성요소간의 결합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음은 5개의 기본글자를 바탕으로 획을 더해가고, 모음도 3개의 기본구성을 조합해 확장문자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 과정이 매우 규칙적이다.

다시 말해 음양오행->기본글자->확장글자->음절->안어->문장의 순으로 문자를 확장해 간다. 이러한 규칙성과 확장성은 『훈민정음』을 구성하고 있는 서문->예의->해례->정인지의 서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수학의 연역 체계와 동일한 한글의 창제 원리

이러한 방식은 공리에서 출발해 하나하나 보다 복잡한 정리를 이끌어내는, 수학의 ‘연역적 체계’와 매우 흡사하다. 기원전 3세기에 저술된 유클리드의 『원론』이 바로 이런 논리체계를 집대성한 고전이다. 수학의 원리인 ‘연역적 체계’, 나는 이것이 한글 창제에 적용된 독창적 원리라고 생각한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글은 학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체계로 구성됐다. 모양의 유사성은 경험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연역적 체계는 수학적 논리성이 없이는 설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종은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착안했을까. 어쩌면 동양의 사고체계인 음양오행 이론에서 힌트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태극이 양과 음으로 나뉘고, 다시 사상과 팔괘로 확장되는 구조를 보라. 기본요소가 규칙에 의해 점차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며 한글의 연역적 체계를 구상했을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좀 더 깊은 연구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탈리아 명품 매트리스 알뜨레노띠 침대와 고양의 대표 지역서점 한양문고가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 번 진짜인문학’은 매 월 첫째 주 월요일 저녁 7시에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에서 진행된다.
9월 2일에는 유형종 클래식 칼럼니스트가 ‘라 트라비아타로 만나는 오페라 감상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참가비 1만원. 문의 및 신청 031-919-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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