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신문] 일본의 아베 정부가 우리나라에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반도체 핵심소재 3개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급소에 해당하는 주요 전략산업의 소재·부품 조달에 차질을 주어 상승세를 꺾겠다는 도발이다. 이는 매년 200억 달러 이상 무역흑자를 보는 일본이 적자국 한국을 상대로 주요 물건을 안 팔겠다는 점에서 국제상식에 반할 뿐 아니라, 과거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1965년 국교수립 이래 일관되게 지켜졌던 정경분리 원칙을 깼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아베신조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내 극우파 정치세력들의 의도는 뭘까? 도대체 이들이 노리는 목적은 무엇일까?

먼저 아베의 도발이 화해·치유재단 해체와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판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일본 당국자들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아베 또한 지난 6일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65년 당시 일본은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한국에 주었던 5억 달러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 아닌 독립축하금과 경제협력 등의 명목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바탕해 1910~1945년 시기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은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고, 이는 국가 간 협상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될 수 없다는 2000년대 이후 국제법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더욱이 1991년 일본 정부를 대표한 야나이 외무성 조약국장도 “개인 간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끝난 게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취약한 법 논리와 불리한 국제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가 지난 과거사를 부정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여기서 물러날 경우 장차 북한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식민지배 청산 협상에서 일본이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것이다. 아베 등 극우파들의 머릿속에는 과거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게 아니라 해당 국가들에 각종 인프라를 건설해줌으로써 근대화를 도와주었다는 인식이 있다.

둘째로 한국 경제의 부상속도가 너무 빨라 일본을 위협하고 있기에 그 상승세를 꺾겠다는 의도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65년 수교 당시 일본의 1/30에도 못 미쳤던 한국 경제는 이제 GDP 규모에서 일본의 1/3에 도달했고, 개인별 소득에서는 비슷해졌다. 또한 일본의 자랑이었던 반도체, 가전, 철강, 조선 등의 분야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일본을 추월했다. 분단되어 한반도의 반쪽에 불과한 한국에게 인구규모 2.5배에 달하는 일본이 턱밑까지 추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부국강병의 가치관을 지닌 극우파들에게 일본이 중국에 이어 통일 한국에게까지 추월당해 동아시아 3위로 전락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시나리오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이웃국가들과의 반목 등 안팎의 모순으로 성장동력을 찾기 어려운 일본의 처지에서 욱일승천하는 한국경제를 그냥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셋째로 동북아시아의 안보지형이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가려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아베는 군대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을 정상국가로 돌려놓는 게 자신의 신념이며 정치활동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 45년 태평양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미군정 하에서 만들어진 굴욕적인 헌법을 바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함으로써 메이지유신 시대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주장이다. 아베 등 극우파들의 목표인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북한 위협론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분단된 채 남북한의 대립과 반목이 지속되고 이로 인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헌법개정 여론 조성에 유리한 것이다. 만약 남북한이 교류·협력을 거쳐 통일로 나아감으로써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동북아의 안보지형이 대립이 아닌 협력 구도로 바뀐다면 이들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남북 관계가 화해국면으로 들어설 때마다 터지곤 했던 ‘북한 위협론’의 배후에는 군산복합체와 일본의 극우파들이 있다. 북한위협론의 산실인 CSIS(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주요 돈줄이 일본 기업들이고 그 배후에 극우파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전쟁을 선포한 아베의 의도가 단순히 과거사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면 우리의 대응도 전략적이고 복합적이어야 한다. 아베 정부와 외교를 통해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타협적으로 풀자는 국내 보수파의 ‘외교론’은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취약 고리를 공격해 성장세를 주저앉히고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 흐름을 막겠다는 의도를 지닌 아베 정부가 합리적으로 응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하게 싸우는 수밖에 없다. 경제적 곤경을 겪더라도 감내하면서 결연히 맞설 수밖에 없다. 민간 차원에서 일본상품 불매와 일본여행 자제운동에 나선 것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쾌거이다. 나라의 위기 때마다 등장했던 촛불 혁명의 재현이다.

한편 전략적인 싸움을 해야 한다. 반일본(No Japan)이 아니라 반아베(No Abe)로 가는 게 지혜롭다. 아베 등 극우파들의 무모한 도발이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면서 일본 민중과는 연대해야 한다. 일본 내에서 77명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며칠 만에 6000명 이상의 일본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일본 내 평화세력은 아직 그 세가 미약하지만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아베와 극우파들을 고립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가 관여하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는 오는 10월 일본 가톨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주교 등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평화를 바라는 양국 종교인들의 연대를 체계화하려는 노력이다. 이번 기회에 한일 평화세력이 반아베(No Abe) 운동으로 굳건한 연대전선을 구축한다면 평화와 통일로 가는 우리의 여정에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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