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슬픈 노벨상』 정화진 작가

항생제·화학비료… 노벨상 받은 6개 발명품 
인류 구원자에서 재앙의 진원으로 전락
욕망의 그늘 짚으며 생태적 질문 던져

 

신간 『슬픈 노벨상』(파란자전거 刊)을 발표한 정화진 작가.


[고양신문] 신간 『슬픈 노벨상』(파란자전거 刊)은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의 어린이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다. ▲엄청난 후유증을 안긴 살충제 DDT ▲세균과의 내성 전쟁을 불러일으킨 항생제 ▲1차 세계대전 전장을 지옥으로 만든 독가스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화학 비료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 된 핵 발전 ▲생태계 교란을 가져온 유전자변형작물(GMO) 등 6가지 인류의 발명품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하나하나 들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제목이 왜 『슬픈 노벨상』일까. 앞에서 나열한 발명품들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하나같이 인류를 구원할 어마어한 선물로 인식됐었다. 살충제와 항생제는 인류를 질병과 감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고, 공기중에서 질소를 추출한 화학 비료는 기아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켜줬다. 핵 발전 역시 그 페해를 미처 알기 전에는 미래를 열어줄 청정 에너지로 각광받았으며, 유전자변형작물은 지금도 전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해가고 있다. 이러한 발명품들은 발견자들에게 노벨상의 영예를 안겨줬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했던, 어쩌면 애써 외면하려 했던 부작용이 드러나며 인류는 새로운 재앙과 맞닥뜨린다. 영광의 노벨상이 슬픈 노벨상으로 바뀌는 과정을 작가는 꼼꼼하게 짚어낸다.
책을 쓴 정화진 작가는 김경윤·김한수 작가 등과 함께 텃밭 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고양의 이웃이다. 1980년대 노동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인 ‘쇳물처럼’을 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정 작가는 오랫동안 글쓰기를 멈췄다가 고양에서 도시농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태적 관점으로 녹여낸 『풍신난 도시농부, 흙을 꿈꾸다』를 발표하며 작가의 이력을 새로 시작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동료 농부작가들과 『청소년 농부학교』를 함께 집필하기도 했다. 백석동 한 카페에서 정화진 작가를 만나보았다.



▲ 소설가가 과학책을 낸 게 조금 의외다. 집필 동기가 무엇인가.

모든 것은 밭에서 시작됐다. 생태농법을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화학비료와 농약, 비닐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쳐줬다.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도대체 얼마나 안 좋다는 건지 질문을 던졌지만 속 시원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아 스스로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화학비료와 농약 등이 발명됐던 당시에는 노벨상을 받을 만큼 인류의 구원자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류를 질병과 기아로부터 해방시키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했지만, 달콤함은 곧 어마어마한 재앙을 동반한 독화살이 돼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정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텃밭인문학을 비롯한 몇몇 자리에서 소박한 강연을 했다. 당시 강의를 들은 이 중 한 명이 출판사에 제안을 해 어린이 버전의 책으로 엮이게 됐다. 

▲ 여섯 개의 꼭지를 스스로 찾아낸건가.

다섯 개는 내가 수집한 자료들이고, 출판사의 제안으로 원자핵을 쪼개는 기술을 핵무기와 핵발전에 활용하는 이야기가 추가됐다. 합리와 상호 이익을 명분으로 전개되는 세계화가 빈부 구조를 고착시키는, 글로벌 경제 이론의 모순도 후보로 검토했지만 과학의 영역에 기반한 다른 주제들과 성격이 조금 달라 제외했다.

▲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기술이 쉽지 않았을텐데.

우선 어린이책이기 때문에 더 정밀한 사실 검증이 필요했다. 문장 하나를 넣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자료를 비교하며 팩트체크를 했다. 그러다보니 자료의 양이 약 3배로 늘었다. 책으로 묶인 양에 비해 공이 엄청나게 들어갔다(웃음).
물론 어린이책이라 차마 담지 못한, 좀 더 불편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책의 주제의식은 선명히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 청소년과 성인들에게 더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불편한 진실이란 사실 참 복잡한 구조 속에서 나온다. 인간은 늘 편리와 안전을 위한 오·남용의 유혹에 직면하는데, 여기에 거대한 기업의 탐욕이 결합되면 걷잡을 수 없는 국면이 되고 만다. 책에 나열된 물질들을 천사에서 악마로 변모시킨 주역들이 바로 국제적 대기업들이다. 청소년과 성인들이 보다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며 독서와 토론을 진행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신물질의 재앙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것은 과학적 지성의 한계 때문일까.

그보다는 각각의 발명품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다급한 현실을 봐야 한다. 새로운 물질이 발명되면 오랜 시간 임상실험 등을 해야 하는데, 주로 전쟁 중에 발명된 물질들은 실험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문제는 전쟁과 기아의 고비를 넘긴 이후에 유해성과 부작용을 검증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거대 자본과 기업의 경제 논리에 포획돼 아무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단계가 됐다. 과학자들이 유해성을 밝혀내도 오랜 시간동안 진실이 봉인된 경우도 많았다.

▲ 새 책을 낸 소감을 갈무리한다면.

책을 내고 나면 개운해야 하는데 『슬픈 노벨상』을 내고 나선 솔직히 마음이 무겁다. 불편한 진실을 들춰냈는데,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 스스로도 하기 힘들어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어떤 시스템 안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지를 알고 나면 뭘 먹어야 하고, 뭘 소비해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삶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질문과 고민을 중단할 순 없지 않은가.

▲ 집필중인 작업을 소개해 달라.

단편 소설을 몇 편 발표하며 소설가로서의 행보를 재개했다. 또한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민주화운동에 자신을 바친 선배 열사의 평전을 소설 형식으로 집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탁을 받아 쓰는 글도 의미 있지만, 사실 내 이야기를 쓸 때 가장 즐겁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