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각 가정과 업소마다 쓰레기를 철저히 분리하여 내어놓고 이를 자원재생공사가 구입하여 완벽히 자원으로 재활용함으로써 고양시가 '쓰레기 분리수거의 메카(Mecca)가 되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견학하러 온다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울까? 이는 허황한 꿈도 아니고 한갓 망상도 아니다. 실은 고양시가 이렇게 쓰레기 분리수거의 원조(元祖)였고, 따라서 세계적 메카가 될 수도 있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좀더 지속적으로 실천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날아간 우리들의 안타깝고도 아쉬운 과거일 뿐이다.

1990년 당시 고양군에서는 전 주민의 대대적인 호응 속에 야심차고 획기적인 사업을 실시하였다. 그냥 쓰레기로 나가 매립하고 소각해버리고 말았던 쓰레기를 집집마다 분리 수거하는 「폐자원 수집운동을 실시한 것이다. 단순히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권고하여 일부가 참여하는 양상이 아니라, 몇가지 독특한 추진방식을 통해 그야말로 범군민적인 참여와 붐 속에 실시한 것이다. 먼저 군에서는 전 세대와 직장에 수집용 마대를 제작하여 배부하였고, 각 세대에서는 마대에 이름을 써서 구분하고, 신문, 도서류, 포장재 유리병, 플라스틱, 비닐 등을 마대에 담아 정해진 날에 문밖에 내놓도록 했다. 부녀회에서는 이를 수집장소에 모아 놓고 자원재생공사에 매각하였다. 자원재생공사와는 미리 물품별 단가와 부락별 방문 날짜 등을 협약하여 정해놓았다. 원재생공사로부터 받은 매각대금은 각 가정과 직장별로 통장을 만들어 개별통장에 입금시켜 주었다. 그리고 매각대금 만큼, 즉 통장에 입금된 금액만큼 예산으로 동일한 금액을 개별통장에 입금시켜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각 가정별 개별통장을 만들어 입금시켜 준 점과 그 입금액만큼 예산을 지원하여 두 배의 금액을 개인이 갖게 한 것이다. 여기에는 깊은 지혜와 이치가 담겨 있다. 즉 분리 수거하여 나오는 이익을 개별화하지 않고 부락 공동기금 등으로 공용화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수고만 더 할 뿐 아무런 개인적 이득이 없으므로 분리수거 의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각대금을 개별화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개인의 이득이 커가기 때문에 더욱 더 활성화되어 간다. 그리고 매각대금 만큼 예산으로 지원한 것은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를 사후 처리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쓰레기들이 주변에 방치되고 그냥 땅속에 파묻힘으로써 오는 토양오염의 비용과 이를 다시 수거하여 소각하고 별도 매립지로 수송 처리하는 비용 등은 통장입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분리하여 내놓았던 집에서 막상 자신의 통장에 만원이 들어오고, 거기에다 군에서 예산으로 또 만원을 넣어 2만원이 되니 점차 관심이 커져 갔다. 버리던 쓰레기에서 아이들 간식비가 나오는데 그냥 방관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이 길가에 버려진 병들을 손가락에 끼고 흔들흔들 집으로 오는 풍경도 보이곤 했다. ‘쓰레기가 아니라 폐자원입니다’라는 구호가 이제 모두의 가슴속에 실감나게 새겨지게 되었다.

지금부터 13년 전, 별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처럼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시절에 한 지역에서 경제적 유인책을 강구하고, 그것도 예산으로 지원하는 예방행정을 추구한 것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앞선 비전과 신념 어린 결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일보가 이를 사회면에 대서특필하여 보도하였지만, 만약 이를 지금까지 실시해왔다면 세계 언론이 세계적 뉴스로 특집 보도하였을 것이다. 하나의 시범적 모델이 다른 지역을 바꾸고 다른 나라를 바꾸어 지구촌의 오염을 한결 덜 수 있는 길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몇 년 뒤 청와대 행정수석실과 환경부에서 이 방식의 지혜를 수용하여 마대가 1회용 종량제 봉투로 바뀌어 오늘날의 제도로 연결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13년전으로 날아가 당시 고양군민들이 열정적으로 폐품 아닌 폐자원 수집을 하던 모습을 바라본다. 모두가 좋은 일,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얼굴에 서려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뜻을 모아 함께 일했던 좋은 사람들- 지금 여전히 고양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훌륭한 분들의 면면을 보게 된다.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감사와 경의를 표해 드린다.
<백성운 고려대 교수·전 고양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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