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고대 아테네가 지중해를 장악했던 시대에는 폴리스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사유하는 철학자들이 많았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들은 국가를 중심으로 자신의 사유를 펼쳐나갔기에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국가 중심의 시대를 지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지중해를 정복하고 그 세력을 더욱 확장했던 헬레니즘 시대에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었다.

작은 규모의 공동체는 붕괴되었던 이 시대에 회의주의 철학이 등장했고,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였다. 이 의심의 태도는 이후 철학계에서 한 번도 사라져본 적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쾌락주의자들이라고 오해를 받고 있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쾌락은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 쾌락이었고, 에너지를 많이 분출하는 정열의 철학이 아니라 에너지를 최소한도로 쓰면서 정신세계에 집중하는 명상의 철학이었다.

한편 키니코스학파로 불리는 일군의 무리가 등장했다. 키니코스는 개를 뜻했고, 그들은 개같이 극빈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철학자가 바로 디오게네스였다. 그는 술통을 뉘어 그곳에서 생활했다. 디오게네스는 삶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고자 했고, 그래서 그가 소유한 것이 한 벌의 옷과 그릇이었다. 그러던 중 개들이 물을 혀로 핥는 것을 목격한 후 그릇조차 깨버렸다. 디오게네스의 스승은 바로 개였던 셈이다.

디오게네스는 냉소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결코 그는 세상을 냉소하거나 세상에서 벗어나 은둔하지 않았다. 그는 아테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자존감 넘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목표는 신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신은 ‘아무 것도 필요치 않은 존재’라고 말하며, 스스로 그러한 삶을 따르려했다. 마치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을 보면 중앙에 하늘로 손을 향하는 플라톤과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인다. 당대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라파엘로의 그림에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디오게네스만이 그들과 무리짓지 않고 계단에 여유롭게 홀로 누워있다.

그는 시노페 출신이었는데, 시노페에서 추방되어 아테네로 오자, 사람들은 추방된 그를 놀리며 비웃었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말한다. “그들이 나를 추방형에 처한 것이 아니라, 네가 그들을 시노페 거주형에 처한 것이다.” 이 놀라운 자존감과 독립심이 디오게네스가 추구한 자유의 바탕이었다. 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만났을 때에도, 그는 개처럼 무심하게 그를 대했다. 마치 자신이 진짜 개가 된 듯이. 대왕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개소리 하지 말고 햇빛 가리니까 비키라고 말했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스로 개임을 자임하고, 개처럼 욕심 없는 삶을 살았던, 육체의 쾌락 따위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모든 에너지를 신처럼 고귀한 정신에 도달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디오게네스 이야기를 왜 지금 이 귀한 지면에 채우느냐고? 나랑 같이 한 장소에 살고 있는 뭉게를 볼 때마다 그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똥개는 바쁘게 살아가는 나를 무심히 쳐다본다. 불쌍한 처지에 놓인 것은 그 놈인데, 그 놈은 내가 불쌍한가보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개집 앞에 편안히 누워버린다. 내가 “뭉게야” 불러도 대꾸가 없다. 늙어서인가, 초월한 것인가. 가끔 그 놈과 눈을 마주칠 때면 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정신없이 사니까 좋냐? 별 것도 아닌 걸 하면서 참 애쓴다. 그냥 조용히 편하게 지내라.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숙인다. 오늘도 개한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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