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결 따라 역사의 흔적 따라,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8) - 대장천 하

개발에서 소외돼 방치됐던 물길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자연 되살아나 
물고기와 새들 찾아오는 대장천 생태습지
조선시대 나무다리 기록한 비석 남아

 

생태계가 되살아난 대장천 모래톱을 찾아온 새들.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지난호에 대장천으로 흘러드는 상류 지류들을 살펴보았으니, 이번호는 본격적으로 원당 주교동 시점에서 출발해 대장동, 토당동, 신평동을 거쳐 한강까지 이어지는 대장천 본류를 따라가 보자.  
10여 년 전, 일산 마두동에서 화정역 부근의 일터에 다녔던 기자는 가끔씩 영주산을 돌아가는 마을길을 출퇴근길로 이용하곤 했다. 그러려면 중간에 대장천을 지나야 했는데, 당시 기자가 목격한 대장천은 미안하지만 ‘똥물’이었다. 개발에서 제외된 농경지를 직선으로 흐르는 하수구 같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의 대장천은 당시의 모습과 비교하면 환골탈태했다. 일정한 수량과 수질을 유지하는 물속에 물고기떼가 헤엄치고, 백로와 왜가리가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거의 모든 구간에서 볼 수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작년에 시작해 올 봄 마무리 된 대장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덕분이다.
복원사업의 핵심은 바로 재이용수 공급 시스템이다. 신평동 원능수질복원센터에서 정화한 물을 모터로 끌어올려 특정 지점에서 방류해 하천이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현재 대장천이 시작되는 원당 고양소방서 건너편, 그리고 중간지점인 대장천 생태습지에 하루에 각각 1만톤과 5000톤의 재활용수가 방류되고 있다.

생태하천에 재활용수를 인공적으로 방류한다는 사실은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지속적 관심과 돌봄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생태적 기능을 유지하는 존재. 인공의 공간으로 편입된 하천의 운명이 대체로 이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시골의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는 대장천 상류의 맑은 물줄기.

어류 3종에서 20종으로 늘어

재이용수를 공급하며 대장천은 생태적 건강함을 많이 회복했다. 윤광옥 고양시 생태하천팀장은 “재이용수 수질 기준을 오염되지 않은 하천의 평균 수질인 3급수 이상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어류는 누치와 살치, 양서류는 참개구리와 청개구리, 조류는 왜가리·쇠오리·청둥오리 등 생태계 복원의 척도로 삼을 깃대종을 선정해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별도의 시민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는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도 “2010년 무렵 대장천 어류 모니터링을 했을 때 겨우 3종만 발견됐는데, 최근 모니터링에서는 20여 종이 발견됐다”고 말한다. 대장천에서 생태교육과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이정희 고양자연생태연구회 대표 역시 “백로와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등 비교적 흔한 조류는 물론, 가마우지, 꼬마물떼새, 할미새, 깝작도요 등도 대장천을 찾아오고 있다”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사진=한기식 자전거21고양지부 사무국장>

 “보행자 전용 산책로 조성됐으면”

재이용수가 공급되는 작은 폭포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성곶교 부근에서 박재궁천, 독곶천 물줄기와 만난 후 대곡역까지 거의 직선으로 대장동 벌판을 가로지른다. 지도를 들여다보면 대장천은 길과 길 사이를 평행선을 그리며 흐른다. 하류를 바라보며 왼쪽으로는 화정시가지의 경계를 이루는 호국로가, 오른쪽으로는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교외선 철길이 뻗어있다.

비록 산책로는 정비되지 않았지만 아래로는 수초 사이 물고기를 구경하고, 초록의 완충지대(논과 밭) 건너편으로 길게 늘어선 화정 시가지를 바라보며 걷는 대장천 나들이는 색다른 매력을 전해준다. 아파트 숲이 틈을 내 준 사이로 멀리 북한산의 웅장한 실루엣도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가을 정취 물씬한 들녘에는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마친 벼가 바람에 출렁인다.
하지만 고개를 오른쪽 영주산 쪽으로 돌리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2000년대 중반 공사를 시작해 아직까지도 마무리를 못 하고 있는 39번국도(호국로) 대체 우회도로의 높은 옹벽과 교각이 시선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천에서 건너다 본 화정 시가지. 멀리 북한산 실루엣도 눈에 들어온다.

 대장천에 산책로나 친수공간이 정비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대부분의 구간이 농경지를 관통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생태가 복원되면서 화정 아파트단지, 또는 철길 건너 영주산 마을 주민들이 산책을 나오는 발길이 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화정 쪽 둑방길은 기존처럼 차도로 유지하되, 아직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영주산 쪽 둑방은 보행자 전용 산책로로 조성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대장천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면 불법경작과 무단투기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경관 품은 생태습지

대장천 위에 놓인 상대장교, 대장천교, 대정교, 중대장교 등 비슷비슷한 이름의 다리들을 차례로 지나 동다리교 부근에 이르면 강둑 우측으로 대장천 나들이의 하이라이트 대장천 생태습지가 나타난다. 올해 5월 개장해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다.

대장천 나들이의 하이라이트인 대장전 생태습지. 지난 5월 개장했다.

 대장천 생태습지 역시 앞서 말했듯 재이용수를 공급하는 벽천폭포가 생태적 젖줄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공급된 물이 굽이굽이 디자인된 물골을 따라 습지를 천천히 돌다가 대장천과 섞이도록 설계됐다. 윤광옥 생태하천팀장은 “굽이를 이루는 물길과 모래톱, 풍성한 습지식물 등 어류들이 산란하는 서식지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물고기들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물새들도 늘어났다.

대장천 생태습지는 경관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관찰데크가 적절히 설치돼 있어 생태적 감성을 충전하는 휴식공간으로서 손색없다. 기자 역시 대장천 습지를 알게 된 후 인근을 지날 때면 습관적으로 잠시 들러 데크를 거닐곤 한다.  

대장천 생태습지를 우점하고 있는 물피.

하지만 조성 첫 해 여름을 지나며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몇몇 지점에서 물 흐름이 둔해져 녹조현상이 관찰된다. 또한 식물다양성을 표방한 것과 달리 습지면적 대부분을 물피가 점령하고 있었다. 대장천 습지공원을 자주 찾는 이정희 대표는 “물피가 가장 많고, 그밖에 돌피, 물방동사니, 털여뀌, 명아자여뀌 등이 발견된다”면서 “의도적으로 식재한 식물들이 첫 해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정희 대표는 “생태습지 둑방에 산수유, 이팝나무, 목련, 배롱나무등 이 심어져 있는데, 미국 흰불나방애벌레가 기승을 부린 탓에 산수유는 거의 죽어버렸고, 나머지 나무들도 아직은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듯하다”며 관찰 결과를 알려왔다. 그는 “물가에서 잘 자라는 버드나무를 식재해 경관과 그늘을 함께 얻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보탰다.

대장천 생태습지의 관찰 데크.

개암나무로 다리 놓은 옛 선조들

대장천 생태공원 하류 대장진교 부근에는 대장천의 역사를 알리는 소중한 흔적 ‘구지도면 대장리 진교비(榛橋碑)’가 서 있다. 구지도면 대장리는 마을의 옛 행정구역명이고, 진교는 개암나무로 만든 다리라는 뜻이다. 대장천에 개암나무 다리를 놓고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1755년 고양군지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일명 견비, 갠비라고도 불렀다는 옛 비석의 표면이 마모돼 2001년 새롭게 복원한 것이 지금의 비석이다.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전문위원은 “조선시대 고양지역 교통과 상업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개암나무 다리가 있었다는 기록을 적어놓은 구지도면대장리진교비

변화 가져올 대곡역세권 도시개발

대장천 구간의 생태적 문제점들을 잠깐 짚어보자. 대장천 주변에는 폐수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창고가 적다. 하지만 주변 농경지와 화훼 비닐하우스도 때론 또 다른 환경오염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명지병원 방향에서 대장천으로 합류하는 수로의 오염이 가장 심한데, 인근 농경지에서 비료나 퇴비 등이 흘러들어 부영양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곡역 부근부터 삼성당마을에 이르는 구간은 철길과 큰 도로 등이 복잡하게 얽혀 관리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이 구간에는 무단 경작은 물론 비닐하우스를 불법 개조한 창고, 개 사육장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제초제로 둑방의 풀을 말려버진 장면도 목격된다. 윤광옥 생태하천팀장은 “대곡역 하부는 하천폭이 좁아 치수적으로도 취약한 곳이지만, 철도부지에 속해 마음대로 손을 댈 수도 없는 구간”이라며 “대곡역세권 도시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 구간의 문제점들이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왼쪽으로 제초제를 뿌려 대장천 둑방의 풀을 제거한 흔적이 선명하다.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일산과 화정에 신도시가 건설되는 틈바구니에서 관심의 영역에서 멀어진 채 방치됐던 대장천은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비로소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대장천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생태하천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여러 변수와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영국의 사회지리학자 엘러스테어 보네트는 『장소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도시란 자연을 끊임없이 도려내는 장소인 동시에, 뒤늦게야 자연을 애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도시는 불가피하게 원래의 자연을 일정 부분 훼손하며 건설되지만, 스스로 파괴한 자연을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 재현하려는 노력 역시 사람의 손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훼손과 복원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생태하천’이라는 이율배반적 이름 속에는 후자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려는 이들의 바람과 다짐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대장천에게 어떤 모습을 돌려줘야 할까.
 

■ 도움말 : 이정희 고양자연생태연구회 대표,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윤광옥 고양시 생태하천팀장,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전문위원.
※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 시리즈 전체 기사는 고양신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생태계가 되살아난 대장천 모래톱을 찾아온 새들.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대장천 물가의 물옥잠이 예쁜 꽃을 피웠다.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산책과 관찰을 위한 데크가 잘 조성된 대장천 생태습지.
빗물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대장천 생태습지 둑방 산책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미국흰불나방애벌레의 공격을 받아 말라죽어버린 대장천 생태습지의 산수유나무.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대장천변의 개 사육장. <사진=고양자연생태연구회>

 

신평배수펌프장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대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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