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결혼비용은 평균 9천88만원이다. 그렇게 많이 드느냐고 펄쩍 뛰는 쪽과 그 정도론 명함도 못 내밀 거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엄청난 입장의 차이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우리나라 20대 직장인의 월급은 133만원.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50대 직장인은 평균 261만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는 아무래도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일반 급여생활자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가며 그 많은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결혼은 만인의 축복 속에 행복이 넘쳐나야 할 인륜(人倫)의 대사(大事)이다. 이 같은 대례(大禮)를 돈을 빌리거나 부모님의 가산을 축내가며 치러야 한다면 그 짐은 인생의 새 출발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신혼엔 넉넉하고 뭐든지 새것이면 좋다. 그러나 '깨가 쏟아지는' 더 없이 행복한 순간에 물질적 모자람은 신혼의 단꿈으로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살림을 하나하나 마련해 나가는 재미는 또 얼마나 쏠쏠할까.

언뜻 실감이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1인당 GNP는 1만 달러로 집계되어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끼어 넣어 바가지를 씌우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보다 몇 배 더 잘사는 선진국들의 결혼식은 얼마나 소박하게 치러지는가를 우리는 잘 안다. 고색 창연한 성당이나 교회에서 사제나 목사님의 축복을 받으며 진행되는 그들의 혼례는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예물이라야 사랑의 징표에 불과한 반지 한 개정도. 우리보다 풍성한 게 있다면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 그리고 꽃다발이리라. 물론 우리 못지 않게 결혼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공교롭게도 호사스런 결혼식 풍습과 나라살림은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신랑 신부를 맞이하는데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거나 예단을 바라바리 실어 나르는 나라는 예외 없이 후진국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고 급기야는 쪽박을 찬다. 패물에서 이바지까지 낭비에 가까운 지출이 4쌍 중에 한 쌍에 이른다는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나라살림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펑펑 쓰는 뒤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속보다 외양에 치우치는 우리네의 겉치레는 IMF의 쓰라린 경험만으로 족하지 않은가.

결혼 시즌이다. 1억을 육박하는 9천88만원이지만 그 돈으로는 빠듯하다는 견해도 물론 있다. 혼사를 직접 치러 본 혼주(婚主)들의 한탄이자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결혼식 날 그 한 순간의 화려함을 돈으로 메우고 더 많은 날들을 괴로워 해야하는 우(遇)를 더 이상 범해서야 되겠는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사교육비 세계 1위, 신용카드 발급은 조사대상 50개국 중 4위. 한국무역협회가 10월에 발표한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 걸 맞는 결혼문화가 아쉬워지는 계절이다.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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