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언어문화진흥회 연변방문

“동포여러분 반갑습네다. 한번 같이 놀아봅세다.”
우리의 동포들은 한많은 민족이 아니라 흥겹고 신명많은 사람들이었다. 한민족 언어문화진흥회는 10년전 처음 조선족들에게 우리말 보급사업으로 출발했다. 진흥회가 우리 소리 지키기와 악기보급으로 사업을 전환하도록 한 계기는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현 하마탕마을이었다.

진흥회 박윤구 사무총장은 99년 우연히 시내에서도 2시간을 울퉁불퉁 시골길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하마탕 마을을 찾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요강, 냄비 뚜껑에 끈을 달아 꽹과리삼아 풍물놀이를 하는 조선족들을 만난 것이다. 최석준 촌장은 박총장에게 우리의 전통 악기를 좀 가져다 줄 수 없냐고 물었고 반신반의하며 장구, 소고, 꽹과리를 한 벌 보내주게 됐다.

“악기를 주면서도 이걸 쓰겠냐 싶었죠. 보시면 알겠지만 하마탕 마을은 조선족 마을 중에서도 못살기로 뒤에서 두 번째쯤 되는 곳이거든요. 그런 동네에서 풍물치고 누가 그러겠냐 싶었던 거죠. 그런데 몇 달 후 찾아가 보니 그 악기를 너무나 잘 가지고 놀더라구요.”

하마탕마을 악기보급 발원지
실제 그랬다. 하마탕 마을에는 젊은이들을 찾기 힘들었고 곳곳에 폐가가 눈에 띄었다. 진흥회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린 마을 회관 앞에 옛날 공산당 행사를 위해 세웠다는 대형 영화관이 폐허로 서있기도 했다. 잘산다는 집의 화장실도 문도 없이 널빤지를 두 개 얹어놓았고 이가 빠진 밥솥은 아궁이도 없이 나뭇가지를 모아피운 불 위에 위태하게 걸려있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마을에서 사람들은 우리 풍물놀이로 신명을 찾고 힘을 얻고 있었다.

중국어로 개구리를 뜻한다는 하마탕 마을에서 진흥회는 조선족들에게 우리 악기 보급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던 것. 4년의 부지런한 활동 덕분에 연변의 하마탕을 비롯해 훈춘, 길림, 흑룍강성 등 150여곳에 악기 700여세트가 기증됐다. 11회를 맞이하는 우리말 자랑대회도 내년부터는 목단강 부근까지로 확대해 해마다 2회씩 개최할 예정이다.

7일 하마탕을 찾은 일행들은 인근 10개 현에서 모인 조선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프랭카드와 환영행렬이 작은 시골 마을을 가득 메웠다. 여무남 회장 부부를 위해서는 노새와 가마를 준비해 고마움을 표하기도. 10개 현에 악기와 문화기금 전달식을 갖고 일행은 마을주민들이 준비한 공연을 관람했다.

일산서 일하는 남편 안부묻고
우리의 농촌처럼 젊은이들보다는 주름이 깊게 패인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풍물에 춤공연을 하는 표정은 매우 밝았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들 “일없습네다(괜찮습니다)”며 오히려 우리의 여독을 걱정해주었다.

직접 키운 양고기, 감자전, 잡곡밥을 배불리 먹고 떠나는 일행을 일산에 남편이 돈벌러 가있다는 류월영씨가 가로막았다. 남편 김영철씨가 중산에서 ‘노가다’를 하고 있다는 류씨는 남편의 전화번호를 쥐어주며 안부를 전해달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악기 기증행사는 다음날 훈춘시로 이어졌다. 이날 행사는 연변조선족 자치주 자선총회, 훈춘수 시선총회, 연번 궁중예술관, 훈춘시 문체국, 연변 민간 문예가 협회가 주최하고 2천여명의 조선족들이 참여했다.
행사장에서 여무남 회장은 “세계 강대국으로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지금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한민족 언어문화진흥회가 조선족 웅비에 기여하길 바란다”며 “앞으로 조선족들의 언어와 문화 지원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마을과 소학교에 악기 기증식을 갖고 이어 2부에서는 조선족들의 수준높은 문화공연을 만날 수 있었다.

진흥회, 언론 지방정부 환대
진흥회 일행은 가는 곳마다 조선족들과 지방정부 관계자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위원회에서는 도착 첫날인 6일 만찬자리에서 여무남 회장 등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훈춘시 자선총회에서는 여회장은 명예회장을 추대하기도 했다. 12시간의 밤기차를 타고 도착한 하얼빈에서도 시 문화관광부 국장이 만찬자리를 마련해 고마움을 뜻을 표했다.

하얼빈시 문화원 서학동 관장은 “진흥회가 1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오면서 이곳 조선족들중에는 박윤구 총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고양시와도 교류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흥회는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변TV, 연변일보,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등이 도착부터 출발까지의 일정을 쫓으며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길림신문 김영자 기자는 “우리 조선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매번 방문 때마다 함께 해 이번에는 어떤 방향에서 기사를 쓸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이번 방문에는 여무남 회장 내외, 정형근 국회의원, 이연석 전 국회의원, 한국일보 노진환주필, 이강준 고양지부장, 권혁호 사무국장, 김성부, 최광필, 이봉상 지부 임원들이 함께 했다. 명지대 북한학과 오금진 학생 등 4명과 올해 우리말 자랑대회 대상 수상자인 대구 도원중 김갑성 학생 등도 동행해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박윤구 사무총장은 “처음엔 뭐 도움이 되겠나 싶어하며 반신반의 시작한 일이지만 이렇게 조선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며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을 불이익을 당하고 고국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총장은 진흥회의 활동이 조선족들에게 힘을 주고 한국에 대한 불신을 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민족언어문화진흥회 고양지부는>
사단법인 한민족언어문화진흥회(회장 여무남)는 우리말과 글을 우리 동포와 해외에 알리기 위한 활동을 10년전부터 시작했다. 정식 설립은 2000년 11월. 이때부터 우리 악기 보급을 중요한 사업을 펼쳐왔다. 기업이나 일반인들의 후원을 받아 조선족들에게 이미 700여세트의 악기를 보급했다. 연변에서 계속해온 우리말 자랑대회는 11회를 맞이했고 내년 1월 목단강에서 열릴 예정이다. 본부 사무실(02-3217-1471)은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해있으며 올해 고양지부가 만들어져 이강준 지부장이 살림을 맡고 있다. 이강준 지부장은 통일 도시 고양시의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조선족과 한국을 잇는 진흥회 사업을 계속 펼쳐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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