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칼럼

오경아 교환일기 대표

[고양신문] 인간의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팩트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사건은 각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인식의 틀을 거쳐 해석되기 때문에 백퍼센트 동일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사주의 해석도 그러하다. 그래서 누구와 상담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그 상담 하나로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명리학 공부를 하다보면 무슨 무슨 ‘귀인’이란 단어를 접하게 된다. 어디선가 숨어 나를 도와주는 기운 정도로 해석하면 무방하다. 그 중 으뜸을 ‘천을귀인’으로 꼽는다. 사주에 천을귀인이 있으면 좋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필자의 언니는 어린 시절 거의 죽다 살아났다. 시골이라 큰 병원이 없던 시절, 아픈 언니를 업고 먼 동네까지 병원을 찾아다니시던 부모님.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절만 해도 어린 아이가 오래 못살고 죽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님도 큰 기대를 하지 않으시고 다리를 건너갈 때까지 숨을 쉬지 않으면 다리 밑에 묻어주고 가려고 하셨단다. 그런데 다리 끝에 도착하자 엄마 등에 업혀있던 언니가 숨을 푹하고 내쉬었다고 했다.

그 뒤로도 언니는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곤 했다. 한 두번 다치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겠냐마는 4남매 중 유난히 언니는 사건사고가 많았다.

명리학을 공부한 후 언니의 사주를 보니 천을귀인이 2개나 있었다. 죽다 살아난 것이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손님들의 사주에서도 천을귀인이 있으신 분들은 언니처럼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들이 있었다. 본인 사주명식에 없더라도 대운이나 세운에서 들어오면 그런 역할을 한다.

천을귀인이 단지 죽을 고비를 넘겨주고 사고의 강도를 줄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죽다 살아났다는 것은 ‘다시 태어남’과 같은 의미이다. 제2의 인생이 부여되었으니 전과는 다른 삶을 살라는 뜻은 아닐까?

별탈없이 무난하게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두 번쯤은 풍파를 겪게 되는게 인생이다. 힘든 고비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천을귀인이 도와주었다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면 그렇게 다시 태어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전과 똑같은 인생을 답습할 것인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인가? 내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리 보면 천을귀인을 귀인 중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자신에 고착되어 살아가는게 보통 인생이다. 타고난 성격과 주어진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는 탓이다.

사주에 있든 운에서 만나든, 나를 도와주는 누군가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타인을 돌아보고 베푸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은 결코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삶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라고 주어진 삶이 아닌 이유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분명 더 나은 삶을 살라는 뜻이고 ‘더 나은 삶’이란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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