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고양신문] 잡초란 없다고 한다. 쓸모없는 풀은 없다는 이야기다. 꼭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을까. 아니다. 우리 곁에서 살아서 저절로 꽃을 피우는 들꽃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야생동물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동물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흔하디흔한 야생의 생명들은 사람들 주변에서 함께 살아온 생태학적 전략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깊은 산속을 버리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주변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손에 뜯기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는 그 잡스러움과 끈질긴 생명력을 보고 ‘잡초’라 하지만 이들은 인간의 공간인 논과 밭, 마을, 길가 주변에서 인간과 공생해 온 상당히 고등한 식물들이다. 이들처럼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교란시킨 땅에 초기 개척자로 들어오는 식물들을 생태학에서는 ‘황무지 식물종(ruderal species)’이라고 한다. 그런데 냉이, 꽃다지, 민들레, 괭이밥, 싱아가 그 무리에 속한다. 이들 대부분 우리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 온 친숙한 이름들인데 ‘황무지’라니… 참 가혹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들을 ‘마을식물’이라 부르자.

그런 의미에서 어릴 적 마을주변에서 늘 보던 동물들을 정서동물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일관성 있게 ‘마을동물’이라 하면 좋을 것이다. 다람쥐, 참새, 개구리, 잠자리, 피라미, 반딧불이 등 생각해 보면 친근한 마을동물은 참 많다. 이들 마을동물들은 마을 주변에서 살아가지만 사람의 공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들만의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을동물이다. 고양시에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생명이 바로 반딧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애반딧불이’다. 고양시 일산에 반딧불이가 살았다고 하면 믿기 어려울 테지만 2000년대 초까지도 밤하늘에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안곡습지공원으로 이름 지어져 있는 고봉산습지가 바로 일산의 마지막 남은 반딧불이 서식처였다. 그 반딧불이를 만났던 이야기다.

<사진=에코코리아>

고양시 토박이인 행주처자를 아내로 맞아 내가 일산에 터를 잡은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초기 일산신도시에는 마을 뒷산과 들판과 샛강과 습지가 곳곳에 있어서 들공부하러 다니기 좋았다. 의기투합이 된 여러 가족들을 모아 꽤 체계적으로 이론과 실습교육을 했고 이때 교육 받은 아이들 중 유난히 자연관찰에 촉이 밝았던 예슬이, 종영이, 부이, 인수, 지민이, 슬비 등 정예부대를 데리고 반딧불이 탐사대를 조직했다. 당시 고봉산은 산아래습지가 있었고 주변에는 아파트단지가 없이 논과 개울, 웅덩이습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있었다. 고봉산습지는 인적이 드물었고 밤에는 꽤 어두컴컴하여 손전등과 포충망 하나씩 들고 짝을 지어 탐사를 했다. 여름밤 풀벌레 소리 나는 풀숲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반딧불이를 찾아 돌아다닌 지 두어 시간쯤이나 되었을까. 어둠속에서 희미한 불빛에 반짝였고 우리들 중 누군가 반사적으로 포충망을 휘둘렀다. 확인해 보니 애반딧불이였다. 고봉산습지에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것을 확인한 산증인들은 그렇게 습지가 잘 보전되리라 믿었다.

<사진=에코코리아>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습지는 남았지만 반딧불이는 사라졌다. 새로 다듬어진 습지는 공원화되면서 사람들 탐방하기에는 편리하게 되었지만 반딧불이의 유충과 그 먹이인 다슬기, 달팽이가 살만한 시냇물습지와 빛을 차단해주는 산림습지는 사라진 것이다. 처음부터 반딧불이 연구자들의 조언으로 듣고 대상종에 따라 서식지를 다듬고 모니터링하고 관리했어야 했으나 서식지의 질보다는 생김새에만 치중한 결과 원래 살던 종이 사라지는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동안 고양시에서는 반딧불이를 만나지 못했다가 2013년 우연히 대자산 주변에서 빛을 강렬하게 발하는 늦반딧불이 여러 마리를 만나게 되면서 고양 땅에서 반딧불이 복원의 희망을 잠시 가졌었다. 하지만 이들 서식지도 곧 위태로워졌다. 서식지를 포함한 주변 습지가 대학부지로 개발됐고, 습지를 보전한다는 계획은 세워졌지만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또다시 연못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빛공해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이라는 한 종(species)만이 100만을 훌쩍 넘긴 고양시에 마을동물 종(species)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우선 고양시에 아직 남아있을 반딧불이를 찾고 이들 개똥벌레가 우리의 밤하늘을 수놓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자. 나아가 아침에 참새가 지저귀고, 산과 호수에 다람쥐가 뛰어 다니고, 봄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여름밤 개구리소리가 들리고 가을에 기러기 우는 고양시를 만들어 보자. 그것이 우리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사진=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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