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경기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장

[고양신문] 달력을 넘길 때 날짜 아래 작은 글씨를 살펴본다. 다시 봐도 낯선 절기의 이름, 언제 봐도 반가운 공휴일의 이름, 그리고 국제적으로 혹은 국가에서 지정한 날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유난히 작은 글씨들이 많아 보이는 10월, 달력에 적혀 있지는 않으나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날이 있다. 바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던 1987년,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과 옷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한 광장에 보였다. 1987년 10월 17일, 광장에 모인 10만 명은 더 이상 빈곤과 양극화에 침묵할 수 없다며 절대빈곤 퇴치운동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기념비에는 ‘가난이 있는 곳에 인권 침해가 있다.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UN은 1992년에 10월 17일을 ’세계 빈곤퇴치의 날‘로 제정했다.

지난 9월, 비극적인 죽음의 소식이 또 들렸다. 생활고를 겪었던 자매가 함께 삶을 마감한 소식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며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말은 이 죽음 앞에 얼마나 공허한가. 복지의 사각지대 운운하며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늘 있었다. 제도 개선의 방향은 어떻게 하면 긴급하게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제 때 신청할 수 있게 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사각지대를 없앤다고 하면서도 복지가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는 선별 복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미래를 꿈꿀 수 없어 생을 마감했을 때, 한편에서는 누군가의 출발선이 공정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가 비슷했다는 점에 비극의 간극은 더욱 커졌다. 빈곤의 양극화는 줄어들기 보다 더 커졌다. 빈곤퇴치의 날과 같은 날이 기념으로만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빈곤퇴치를 위해 꼭 없애야 하는 것은 빈곤을 유지하게 만드는 구조다. 이를 손대지 않고서 빈곤퇴치를 하겠다는 것은 공언일 뿐이다.

선별하는 복지는 빈곤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기준자체도 굉장히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기준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순간 혹은 부합하지 않는 하나의 조건이라도 있다면 사각지대가 생긴다. 선별된 복지를 받고 있다면, 복지를 받는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빈곤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빈곤을 유지하게 만드는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 선별적 복지를 보편으로 넓히는 것이 급선무다. 또, 선별하는 복지는 복지를 받는 자격을 가진 이를 낙인찍는다. 복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복지를 받을 만큼 가난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극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면 사회안전망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대안으로 모든 이들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기본소득은 얼마나 가난한지에 대한 증명 없이, 노동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검증 없이 그리고 부양할 가족이 있는지에 대한 기준 없이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현금이다. 가난할수록 잃을 수밖에 없는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시작해야 한다. 빈곤을 유지하게 하는 구조를 없애는 사회를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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