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의 호수공원 통신>

최인훈 작가의 전작을 모은 '최인훈 전집'(문학과지성사 刊)

[고양신문] 뜻 있는 각계 인사들이 고 최인훈 작가 기념도서관을 고양시에 짓자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인훈 작품 읽기도 하고 토론회 등 크고 작은 행사와 모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이었던가요. 고양신문 유경종 기자가 “돌아가신 최인훈 선생님 기념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최인훈 작가 유족인 아들 최윤구 음악평론가도 ‘고양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에 협조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넌지시 제안했습니다. “최인훈 작가 작품 속에 나오는 나무에 대해서 정리해보면 어떻겠습니까?” 하고요. 아마 제가 ‘문학 작품 속 나무 이야기’를 주제로 박완서·이문구 소설가 작품 속에 나오는 나무 이야기를 강연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시간을 내서 살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최인훈 전작을 다시 읽으려면 시간과 정성을 꽤 쏟아야 한다는 걸 알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야 그 때 생각이 떠올라 최인훈 전집을 찾아 시간 날 때마다 한 권씩 다시 읽고 있습니다. 문학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최인훈 사상이나 작품에 대한 조명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선생 작품 속에는 어떤 나무가 나오나 살피고 있습니다. 최인훈은 『회색인』과 『서유기』에서 어릴 적 북쪽 고향 풍경을 사과(밭)와 함께 불러냅니다.

『회색인』은 북에서 월남한 가난한 고학생 독고준이 주인공입니다. 어머니와 누님을 북한에 두고 남쪽에 내려왔습니다. 먼저 월남한 아버지를 만났지만 아버지는 곧 병으로 죽습니다. 1958년 가을, 비 내리는 날 독고준 하숙집에 친구인 정치학도 김학이 방문합니다. 김학과 술을 마시며 변혁에 대해 논쟁하던 독고준은 친구를 보내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빠집니다.
“북한의 고향집. 항구 도시에 연한 작은 마을. 멀리 제련소 굴뚝이 바라보이고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저 아래로 Y만의 해안선이 레이스 주름처럼 땅을 물고 들어오는 곳. (사과)과수원을 하는 집이 그의 고향집이었다.”

호수공원 꽃사과나무. 미니사과처럼 열매가 작아 발효시켜 효소를 담거나 고기 연육제로 사용한다. <사진=김윤용>

최인훈은 1936년 두만강 인근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회령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9살에 해방을 맞았는데 소련군이 진주해왔습니다.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최인훈 집안은 반동지주로 몰려, 부모님이 함남 원산으로 이사하면서 원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고 합니다. 독고준과 최인훈이 살던 시공간이 겹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속 독고준은 1950년 6월 사과밭에서 전쟁을 맞습니다. 사과밭 둘레에 있는 밤나무 숲에 앉아 폭격으로 파괴되어 연기에 싸인 도시를 바라봅니다. 독고준은 반동분자의 아들로 몰려 매번 사상비판을 해대는 학교 선생과 친구가 싫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오래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소설 끝부분에서 친구 김학이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권유하자 독고준은 생각합니다. 김학은 고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없다고. 그리고 “그 과목밭에서 나의 꿈과 평화를(오, 그 5월의 사과꽃 같은 다디단 꿈) 찾을 수 있을까.”라고 독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에덴의 사과 아닌 그 ‘그저 사과’가 ‘신화’다.”

중편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즉 ‘밀실과 광장’ 어느 쪽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는 인물입니다. 배를 타고 가다 인도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마찬가지로 최인훈은 『회색인』 독고준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 지성인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몇 해 전 호수공원 가을 꽃 전시회에서 만난 사과나무. 화분에 심어 놓은 사과나무에 제법 큰 사과가 열렸다. <사진=김윤용>

 

호수공원 꽃사과나무 꽃. 사과나무는 꽃 모양에서 알 수 있듯 장미과 잎떨어지는 중간키나무다.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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