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초저가 물건 값의 비밀

[고양신문] 내 사무실 근처에 모두가 알만한 유명 점포가 있다. 주로 1000원에서 5000원 이내 초저가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대형가게다. 나도 가끔 들러 물건을 구입하다보면 소비자로서는 좋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싸게 구입하면 과연 이윤이 남을까 하는 점과, 더 걱정은 판매되는 대부분이 플라스틱 제품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사람들은 싸다는 이유로 오래 간수하지 않고 쉽게 버리게 된다. 이렇게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값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일단 인건비가 싼 곳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주로 ‘메이드 인 차이나’로 대표되던 이런 제품들은 최근 중국의 인건비가 만만치 않게 올라 이제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인도 등으로 이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우리가 쓰는 저가의 물건은 동남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한 수많은 노동자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억압과 비인권적인 노동력 착취도 있었을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나의 편리와 안락의 토대는 값싸고 억압적인 노동력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저가 노동력과 공짜 자연

물건가격이 싼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모든 자연자원을 거의 공짜로 구해서 생산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걸 버리는데 드는 비용은 전혀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자원이 공짜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살펴보라. 우리가 먹는 식수‧공기‧석유‧가스‧광물 등은 엄밀히 따지면 부지 구입이나 채굴과정에 돈이 들뿐 그 자체는 생산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 자연에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또 폐기하는데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초저가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속가능한 수준만큼만 자원을 이용해야하는데 회복과 재생이 불가능한 수준의 자연 착취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 값싼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가난한 나라와 평등하게 나눠 써야 할 자원을 잘사는 나라들이 독식하고 있는 일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미래세대가 써야할 자원은 남겨두고 써야하며, 그들에게 쓰레기는 넘겨주지 않아야 하는데 오늘 우리의 산업시스템은 이를 고려하는 장치가 전혀 없다. 내가 소비하는 저가의 물건은 바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써야할 자원을 빼앗아 쓰는 대가이며, 미래세대가 써야할 자원을 끌어당겨 쓰고 있는 대가인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소비의 편리함은 공짜가 아니다. 반드시 인과응보가 따르며 대가가 있다. 우리가 버리는 비닐과 플라스틱은 이미 태평양에 한반도 보다 커다란 섬으로 떠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연은 무한하다’는 전제와 ‘자연물은 공짜’라는 생각으로 물건의 가격이 정해졌고 산업사회의 시스템은 그 가격정책을 밑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다. 이것이 오늘날 경제학의 토대이고 정치는 그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무지이고 무명이며 인류의 어리석음이다.

팩트는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라는 사실이다. 자연은 유한하며, 연결된 자연을 소비하는 데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가격이란 본래 없는 것

내 앞에 놓인 이 물건은 나무와 동식물, 짐승과 태양, 비, 구름 등 자연과 우주의 합작품이다. 가격은 그저 사람끼리의 약속일뿐이다. 물건의 고유한 가격일수 없다. 더욱이 위대한 우주적 합작품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은 모두 기업의 노력으로 된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들이 이용한 도로와 시설, 전산, 전기 등은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국민들의 돈이 그들의 이윤을 얻게 만들어준 것이다. 마땅히 그 이윤 중 일부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자연은 공짜일수 없으며, 자연을 회복하고 정화시키는데 재투자하는 일은 후손들의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해 당연히 할당해야할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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