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한눈파는 아이』 출간한 손택수 시인
가좌도서관 북토크 열고 독자와 만나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를 출간한 손택수 시인.
『목련전차』,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자연과 맞닿은 섬세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 온 손택수 시인이 지난달 첫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창비)를 출간했다. 신간 동시집은 걸핏하면 야단맞고, 어딘가 한눈파는 아이의 심성을 그려내며 어른들의 시선이 요구하는 ‘아이다움’의 전형을 경쾌하고 솔직하게 비틀고 있다.

덕양구 원흥동에 거주하는, 고양의 이웃이기도 한 손 시인은 21일 고양시가좌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도서관 강좌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손택수 시인과 이런 저런 인연을 맺은 독자들이 여럿 참가해 ‘정겨운 졸업생 모임’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본격적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역서점에서 공수해 온 10여 권의 동시집도 일찌감치 완판됐다. 시인에 대한 기대감에 예쁘게 디자인된 책 만듦새의 매력이 더해졌기 때문인 듯했다.

손택수 시인의 이날 북토크는 신간 동시집에 대한 진솔한 소개인 동시에, 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꿋꿋이 지켜내고 있는 동시라는 장르에 헌정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에세이였다. 강의 전반부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동시가 머무는 '투명한 단순성'의 세계
시인으로 등단하고 20년 만에 첫 동시집을 냈다. 아마도 이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동시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동시는 쓰기 쉬울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 동시라는 장르의 ‘투명한 단순성’의 세계에 빠지면, 복잡한 시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소년 시집 『나의 첫 소년』(창비교육)을 발표했고, 몇 해 전에는 한편의 성장소설 같은 시들을 모아 『의자를 신고 달리는』(창비교육)이라는 청소년 성장시선집을 묶어내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무의식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으로 나를 이끄는 것 같다.
어릴 적 영산강변 마을에서 자라다 6살 때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나를 키워 준 고향과의 단절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거북이가 그려진 광주고속 버스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꼬마아이가 7살 때 나의 모습이었다.

상실이 선물해 준 선물, 그리움
하지만, 뭔가를 상실하고 나면 뜻밖에 좋은 것이 찾아온다. 바로 ‘그리움’이다. 사람은 그리움 속에 있을 때 맑아진다. 그리움에는 싸움이나 경쟁이 깃들지도 못한다. 그리움 속에서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질문한다.
커다란 상실이나 고통, 죄의식 등은 스스로의 존재를 각성케 하는 값진 문학적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1970년대 해외로 이민을 간 이들은 70년대의 감수성을 강력하게 기억하고 있고, 소년기에 출가한 종교인들은 그 시절의 순수한 심성을 오래도록 간직한다. 이는 다시 말해 생에 단 한번만 존재하는, 반복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사랑이 있다는 얘기와도 닿는다. 나에게는 영산강변 마을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그 사랑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들...

손택수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창비).

어릴적 나는 악동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늘 뭔가를 질문하는 아이였다. 꽃을 봐도, 구름을 봐도, 노을을 봐도 항상 쓸모없는 질문이 샘솟듯 쏟아져 나왔다. 고향에서는 몸과 대지, 사람, 언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향집 감나무 아래서 나는 흙을 조물락거려 빚은 떡에 감꽃을 올려 먹기도 했고, 왠지 슬픈 날에는 볏짚가리 속에서 강아지를 안고 잠들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으리라. 아이들은 누구나 만물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른이 되면서 문명과 제도에 길들여져 그런 질문들을 잃어버린다. 근대사회가 열리며 인간들은 자연의 질서를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며 소박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상실했다. 그 잃어버린 세계가 동시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동시는 ‘시의 오래된 미래’다. 정지용과 백석, 박목월과 윤동주 등 좋은 시인들은 하나 같이 동심을 간직한 이들이다. 그들의 시 속에는 아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질문과 아픔, 부끄러움이 담겨 있지 않은가.

아름다움 발견하는 아이의 눈
어떻게 하면 나를 속박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이 쓴 시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쓴 ‘송아지’라는 동시를 감상해보자.

   송아지 눈은 크고 맑고 슬프다/ 그런데 송아지 국물은 맛있다/ 나는 어떻하지?

참 아름답다. 아이는 송아지의 눈앞에 멈춰 서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모순을 고백한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진다. 좋은 글쓰기의 모든 것이 이 안에 다 담겨있다. 피카소는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예술가란 자기 안에 깃들어 있는 존재의 시원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아닐까. 동시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송아지 눈을 들여다보는 작은 키의 아이를 찾아내게 해 준다.

손택수 시인 북토크에 참가해 손 시인의 작품을 낭독하는 참가자.
북토크 참가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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