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해마다 내게 울금가루나 울금환을 사가는 단골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에도 친한 사람의 소개를 받았다면서 울금제품을 주문하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그런데 새로운 단골 가운데 몇몇은 택배를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의 내용인즉슨 자신은 오랫동안 진도에서 수확한 울금을 사서 꾸준히 먹어왔는데 자유농장의 울금은 이상하게 단맛이 나고 먹기가 편하다면서 그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농법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한다.

나는 지금도 자유농장의 울금을 찾는 단골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이유는 오로지 농법에 있다고 믿는다. 울금 주문전화를 받을 때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팔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받기도 하는데 그때 느끼는 보람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울금은 농사보다도 수확해서 가공하기까지가 몇 곱절 힘이 드는데 그때에도 나를 믿고 울금가공제품을 기다리고 있을 단골들을 생각하면 일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수확한 울금을 잘게 쪼개어서 흙을 털어내고, 물에 불린 울금을 여섯 차례에 걸쳐서 세척을 하고, 잘게 편을 썰어서 건조기에 말리는 과정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런 다음 건조한 울금을 경동시장에 가져가서 전문 업체에 맡겨 가루를 빻고 환을 만들어 와서 유리병 포장을 하는데, 이때에도 유리병을 일일이 펄펄 끓는 물에 넣어서 열탕소독을 한다. 나는 농법도 농법이지만 사람 입에 들어가는 식품을 다룰 때에는 가공과정도 농법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올 겨울에 나는 울금 가공과정에서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경동시장에서 곱게 빻은 울금가루를 차에 실은 나는 후배가 직접 농사지은 꿀을 업체에 건네며 울금환 주문을 넣었다. 그런 뒤 말굽자석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삼십 년 지기이자 가장 큰 울금 구매고객이기도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금 가공이 다 끝났냐는 친구의 질문에 난 별 생각 없이 울금환을 업체에 맡기고 울금가루만 찾아와서 지금 말굽자석으로 쇳가루가 나오는지 아닌지 검사를 해보려고 한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대뜸 울금환을 만드는 가루는 검사를 했냐고 물어왔고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작년에 울금을 수확할 때 친구는 가루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들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는 뉴스를 봤다며 내가 만드는 울금가루도 영 먹기가 찜찜해졌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자석으로 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선선히 그러마고 대답을 한 나는 무심코 검사 없이 포장을 해버리고 말았다.

자석으로 검사도 하지 않고 울금환을 맡겼다는 내 궁색한 대답에 친구는 초심을 잃었다고 대노하면서 만약에 울금가루에서 조금이라도 쇳가루가 검출된다면 울금환을 전량 폐기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나는 당연한 의무라는 생각에 진지하게 친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말굽자석으로 울금가루를 헤집어가며 검사를 해보았다. 다행히 쇳가루는 조금도 검출되지 않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쇳가루가 검출되었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러고 보면 난 이번에 귀한 경험을 한 셈이다. 이번 일을 통해서 사람 입에 들어가는 식품을 다루는 일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고, 매 과정을 엄중하게 살피지 않으면 그 자체가 믿음에 대한 배신이고 만인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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