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권우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한해를 마무리하며 뇌리를 떠나지 않은 낱말이 있으니 ‘탄광의 카나리아’다. 잘 알다시피, 19세기에는 광부가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갱도로 들어가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카나리아가 일산화탄소와 메탄에 약한지라 이상증세를 보이면 즉시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탄광에서 자주 일어난 가스중독 사고를 막는 당시의 방법이었다. 올해에도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카나리아의 경고음이 크게 울렸다. 하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적었던 듯싶다.

가장 중요한 경고음은 기후위기이다.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시기보다 2도 이상 오르면 파국이 온다고 과학자들이 누차 말했다. 현재는 이미 1.2도가 오른 상태. 유엔 주도 아래 1.5도 상승을 마지노선으로 하자고 했지만 추세로 보아서는 훌쩍 넘어설 듯하다. 과학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이른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다.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전체 균형이 깨져버려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시점’을 이른다. 이 상황이 벌어지면 인류에게는 가공할 재앙이 닥친다.

과학적 근거를 들어 충분히 설명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한다. 한겨울 미세먼지가 불어오면 온나라가 난리다. 그런데 그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재앙이 닥친다는 데도 관심이 없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기후위기를 거짓이라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파리협약에서 탈퇴하였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미국에 팔라고 억지 부르는 것은 지구가열 현상으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접근 가능해진 자원을 선점하려는 술책이다. 오죽하면 스웨덴의 소녀 툰베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기성세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등교거부운동을 벌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겠는가.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나 정상회담은 열리나, 구체적 해결방안에는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시한폭탄이 터질 시간이 다가오지만, 누구도 막으려 나서지 않는 꼴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한 대가다. 화석연료를 무한대로 써대는 문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그러니까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시인이 이 문제로 고민하면서 이러다간 우울증에 걸리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절절한 마음을 이해했더랬다.

또 하나의 경고음은 불평등 문제다. 이 문제는 그동안 1대 99의 대결구도로 짜여 있었다. 이른바 재벌급에 이르는 한줌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분배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결해온 셈이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해서 국내에서도 이 문제를 1대 19대 80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동안 99에 숨어있던 19의 실상이 까발려진 거다. 1의 부가 압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19의 부도 상당하며, 두 집단 모두 부를 세습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19는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대체로 전문가집단이라 이들이 80을 위해 더 세금을 내고 더 특혜를 포기하면 1을 압박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높다.

청년이 세대 불평등 문제를 내세운 지 꽤 되었다. 앞선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왔건만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에서 보듯 사회진출의 기회를 원천봉쇄당하고 있다. 기득을 내려놓지 않으면 청년세대는 분노할 터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우리 역사에서 기성권위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86세대가 정치나 경제의 권력을 잡은 상황이건만 청년세대가 좌절한다는 것은 분명히 아이러니다. 정치의 정의를 외쳤다면, 이제 경제의 정의를 일구어내야 한다. 그래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터다.

탄광의 카나리아는 지금 격렬하게 우짖고 있다. 시야를 넓혀 지구차원에서 보더라도, 시야를 좁혀 이 나라를 보더라도 엄청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다가오는 명백한 재앙을 막으려고 나서고 있는가? 아니면 아무 근거 없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믿고만 있는가? 남보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 일 년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면, 나 자신도 귀를 막고 살았구나 싶어 깊이 반성한다. 내년에는 우리가 모두 이 우짖음에 화답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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