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의 이웃> 삼송동 ‘영광종묘’ 장석원 대표

고양시 최초 ‘백년가게’ 선정
69년 개업, 농업인과 함께 50년
농업과 종교에 집중한 선한 삶
어진 인품, 깊은 신뢰가큰 자산

아들 장덕수 씨 사업 이어받아
지식기반 스마트 농업공간 변신

영광종묘의 대를 잇고 있는 아들 장덕수 씨와 장석원 대표.

농촌의 부흥 꿈꾸며 ‘지역으로’

[고양신문] 통일로 삼송역 사거리에서 신원마을 쪽으로 언덕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영광종묘농약상’ 간판이 눈에 띈다. 비록 삼송지하차도 공사 과정에서 원래의 가게 자리가 수용되며 10여 년 전 언덕 위쪽으로 매장을 옮기긴 했지만, 고양의 토박이들에게 통일로변 영광종묘는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나무처럼 미덥고 반가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영광종묘농약상은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 육성사업’에서 고양시 최초 백년가게로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매장 입구에는 멋진 ‘백년가게’ 현판도 내걸렸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된 가게를 기준으로 엄정한 심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는데, 영광종묘는 그 기준을 훌쩍 뛰어넘어 50년, 반백년을 세월을 꼬박 채웠다. 백년가게 현판식이 있던 날에는 단골손님과 거래처 사람들, 그리고 삼송 상가거리의 이웃들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며 축하를 보내줬다. 지역사회에서 장석원씨와 장덕수씨가 쌓아온 신뢰의 크기를 짐작케 한 장면이었다. 

장석원(81세) 전 대표가 1969년에 창업한 영광종묘농약상은 현재 아들 장덕수(49세) 대표가 대를 잇고 있다. 장석원씨가 가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종묘와 농약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매장이 고양군 전체에 아예 없었다. 영광종묘의 뒤를 이어 70~80년대에 일산과 원당, 능곡, 벽제 등 곳곳에 20여 곳의 종묘상이 차례로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영광종묘는 규모와 전문성 면에서 고양을 대표하는 종묘농약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석원씨와 장덕수씨로 이어지는 영광종묘농약사 50년 역사에는 고양의 농업 변천사, 나아가 이 땅의 모든 농민들의 궤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원당 성사동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학교를 다닌 장석원씨는 농촌 부흥의 꿈을 안고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후, 1964년부터 고양군 농촌지도소에서 일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했지만 여전히 보릿고개가 무서웠던 시절이었으니, 식량 증산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생존의 문제이자 국가적 과제였다.
“유달영씨가 쓴 농촌계몽서적과 농업으로 부국을 이룬 덴마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고장도 하루 빨리 부유한 농촌이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품었지요.”

장석원씨는 직장에서 내 준 자전거를 타고 원당에서 중면 일산리(지금의 일산1동)로 출근한 후, 농민들의 현장을 찾아 송포와 이산포, 대화리와 장항리 들판을 매일같이 누볐다. 농민들의 고충을 개선하고, 정부의 시책을 농민들에게 전달하며 식량증산의 최전방에서 뛰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4H운동과 새마을운동이 농촌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청년들이 의욕적으로 나서 농산물 품평회를 열기도 했고, 마을마다 퇴비장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고양을 대표하는 농업인으로 손꼽히는 김보연 산림조합장, 이승엽 전 벽제농협조합장(현 고양문화원장) 등이 모두 청년시절부터 4H운동을 부지런히 하며 지도력을 연마한 이들이었다.

영광종묘의 ‘100년 가게’ 현판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주민들의 환한 모습. 그간 장석원 대표가 쌓아온 신뢰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기독교 농촌선교부와 인연 맺고 종묘상 개업

장석원씨가 두 번째로 몸담은 기관은 미국과 캐나다의 기독교인들이 한국 농촌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대한기독교 개혁선교회 농촌선교부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농촌 현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장석원씨가 실무의 적임자였던 것. 그는 이곳에서도 특유의 친화력과 성실함으로 바다 건너 전해오는 정성이 농민들의 삶에 기름진 거름이 되도록 헌신했다. 비닐하우스의 초기 모습인 무릎 높이의 온상을 만들어 보급했고, 집집마다 돼지를 나눠주고 새끼를 낳으면 돌려받으며 농가의 부업을 삼도록 했다. 

장석원씨가 종묘상을 시작한 것은 농촌선교부 본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해외의 후원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니 안정된 사업기반을 만들어 우수한 종자와 농약을 지속적으로 보급해보라는 제안을 받아들여 매장을 열었다. 기독교적 신앙을 반영해 축복을 기원하며 ‘영광종묘’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부족했다.
“당시는 병충해를 줄이는 게 발등의 불이었어요. 마침 독일에서 개발된 ‘파라치온’이라는 농약이 보급돼 커다란 깡통에 농약을 받아 와 박카스병에 따라서 농민들에게 팔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농약의 위험성이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생각도 못 했던 시절이었지요.”

이렇듯 농민들의 욕구와 정부 시책, 우수한 종자와 농자재의 보급이 더해져 고양 땅 농업은 해가 다르게 생산성이 높아졌고, 밑바닥을 면치 못했던 농민들의 삶에도 조금씩 희망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농촌경제의 안정이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상도로 이사 가도 찾아오는 단골손님

그러나 도시화의 물결이 고양에도 불어오며 80년대를 정점으로 고양시 농업인구는 점차 줄어들었다. 가장 먼저 주교동과 관산동, 그리고 은평구 진관내외동의 농경지가 주택가로 바뀌었고, 이후 일산신도시, 화정과 행신, 삼송동과 오금동, 그리고 지축동과 향동의 농토가 택지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덕양구에 마지막 남은 대규모 농경지역인 화전과 용두동, 창릉동 일대마저 3기 신도시 발표와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영광종묘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활로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앞날이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장덕수씨는 담담하면서도 자신감이 배인 대답을 들려준다. 
“우선은 택지개발로 고양을 떠난 분들이 파주와 연천, 여주, 멀리는 충청도와 경상도 등 다른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여전히 영광종묘를 찾아와 주십니다. 아버님이 쌓아 온 신뢰가 든든한 자산인 셈이죠.”

오랜 단골을 유지하는 것이 아무래도 장석원 전 대표의 몫이라면, 새롭게 변모하는 농업시장의 흐름을 따라잡는 것은 아들 장덕수 대표의 과제다. 그는 고양 땅 농업의 미래를 이렇게 진단한다. 
“대규모 주거단지와 농경지가 이웃해 있는 고양은 아무래도 엽채류를 중심으로 한 근교농업에 유리합니다. 또한 로컬푸드산업의 수요도 높고, 도시농부와 주말농장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전에는 자식들은 농사 안 시킨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를 이어 농업을 계승하는 2세 농업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다 나은 생활환경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며 조경과 관상용 식물재배 시장도 확대되고 있구요.”  

장덕수 대표 식물보호사 자격증 획득 '겹경사'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 인증 현판 앞에 선 장석원, 장덕수 부자.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장덕수 대표는 영광종묘농약상을 종합 팜마트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하나하나 진행하고 있다. 과거처럼 관행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최신 지식을 바탕으로 스마트 농업을 컨설팅하는 농업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변화를 거부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늘날의 농업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해야 하는 첨단 산업이 됐습니다. 매스컴의 영향으로 유행을 타는 품종도 수시로 바뀌구요. 그걸 따라잡으려면 제 일에 자부심을 갖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현장 농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요.”

조경관리사를 비롯해 다양한 공부를 이어오던 장덕수씨는 최근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농촌진흥청이 부여하는 국가기술자격증으로서, 명실상부한 식물병원 원장이 된 셈이다. 장 대표는 “바쁜 매장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도 “식물 전문가 최고의 단계인 ‘나무의사’ 자격증에도 언젠가는 도전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장석원씨 역시 “고양시 종묘농약상 중에서는 최초”라며, 힘든 과정을 인내하며 자격증 취득을 이뤄낸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어려워도 손 잡으면 길이 열립니다

장석원씨는 겸손하고 넉넉한 인품으로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헌신했다. 고향마을의 작은 교회(성사감리교회)를 꾸준히 섬기며 고양지역을 대표하는 평신도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고, 30여 년 전 고양YMCA 설립 멤버로 참여해 2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양신문의 오랜 독자이기도 한 장석원씨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양의 이웃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고양신문 독자 여러분, 특히 50년 동안 영광종묘를 아껴주신 농업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제가 어렵하고 하지만, 함께 손을 잡고 간다면 새로운 길은 늘 열릴 겁니다. 2020년 새해, 모두에게 희망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