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김용철 사진전 '경의선 이야기'

[고양신문] 김용철 사진작가의 사진전 ‘고양의 경의선 이야기’가 고양문화원 로비에서 열리고 있다. 80~90년대 경의선 기찻길과 열차, 기차역, 그리고 경의선에 기대어 소박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윽한 서정성으로 그 시절 추억을 호출한다.

 

단선 철로를 힘차게 달리고 있는 경의선 열차. 디젤기관차가 끄는 비둘기호 열차다. <사진=김용철>


김용철 작가와 경의선과의 만남을 이어준 이는 그의 아내였다. 1987년 여름, 군에서 제대한 푸릇푸릇한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가씨를 처음 만난 곳이 바로 경의선 신촌역이었다. 서울 신당동에 살았던 김 작가는 고양군 행신리에 살았던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수시로 경의선 열차에 올랐다.
“경의선을 따라 늘어선, 근대의 풍경을 간직한 작은 역들이 너무 좋았어요. 사진작가로서의 호기심이 더해져 자연스레 경의선 안팎의 모습들을 흑백사진 속에 담기 시작했지요.”

당시 경의선 백마역 인근에는 화사랑, 고장난 시계와 같은,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주점들이 늘어선 낭만의 해방구였다. 암울했던 시대의 우울도, 풋사랑의 아픔도 막걸리 한 잔으로 목 축여가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김용철 작가 역시 아내와 함께 백마역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김 작가는 결혼을 한 후 신도시로 변모한 행신동에 보금자리를 꾸리고, 두 아이를 낳고 성장시키며 18년을 고양시민으로 살았다.

백마역 부근의 철로를 걷는 이들. 들녘이 있고, 철길이 있고, 근사한 주점이 있었던 백마역은 주말마다 젊은이들의 발길로 붐볐다. 멀리 고봉산의 철탑이 우뚝하다. <사진=김용철>

1906년, 대륙침략을 꿈꾸던 일제에 의해 군사철도로 만들어진 경의선은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고양 땅을 내달렸다. 맨 처음 능곡역과 일산역이 만들어졌고,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8개의 역이 차례로 들어섰다.

1990년대 초, 고양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됐지만, 경의선 기찻길과 기차역은 시간이 멈춰버린 지점처럼 오래도록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까지도 디젤기관차가 승객을 실어 날랐고, 딱딱한 종이로 만든 기차표에 역무원이 일일이 손펀치로 구멍을 뚫어주곤 했다. 정기적으로 통학·통근하는 이들은 일정기간 자유롭게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끊어 코팅을 해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이후 경의선 복선화 공사가 진행되고, 디젤기관차가 끌던 비둘기호·통일호 열차는 쾌적하고 조용한 전철로 바뀌었다. 행신역에서는 초고속열차 KTX도 출발한다.
10년 전 김 작가는 파주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고양과 경의선은 그의 마음 속 안식처다. 그런 까닭에 고양문화원과 함께 경의선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 시간동안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고양문화원에서 경의선 사진전을 열고 있는 김용철 사진작가.

김용철 작가에게는 경의선과 함께 하고픈 일들이 여전히 남아있단다.
“하루속히 남과 북이 하나가 종착점인 신의주까지 내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시절이 오면 파주 문산역 위쪽의 경의선 풍경들을 마음껏 카메라에 담고 싶습니다. 나아가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를 넘어 대륙을 향해 뻗어나갔으면 합니다.”

2020년 새해, 김 작가의 꿈이자 고양시민의 꿈, 그리고 모든 민족의 꿈을 향해 경의선 기차 바퀴가 조금씩 굴러가기를 함께 기원해보자.

길게 마주보고 앉게 설계된 열차 좌석. 책과 신문을 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졸음에 겨운 아저씨의 몸은 열차와 함께 흔들리고, 넉넉한 자리를 잡은 아주머니는 아예 고무신을 벗고 시트 위에 올라앉았다. <사진=김용철>

 

한때 역사도 철도원도 없는 무인역으로 운영됐던 강매역 플랫폼. 강매역은 승객 감소로 폐역이 됐다가 전철화 공사 과정에서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역이 다시 만들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진=김용철>

 

행신역 부근의 경의선 철로. 기찻길 옆 논두렁을 따라 나무 전봇대들이 늘어서 있다. 객차의 맨 뒤칸 객차의 꽁무니에 타면 나란히 멀어져가는 철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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