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김민애 기획편집자·독서동아리 활동가

[고양신문]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지금은 적은 양의 약으로 조절이 잘 되고 있긴 하다. 최근에 찾아온 염증 위치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이다. 열 개나 되는 손가락 중 그깟 하나쯤이야 싶었는데, 새삼 엄지손가락의 위력을 실감중이다. 겨울은 감귤의 계절. 꼭지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딱 넣고 시원스럽게 까야 하는데 그걸 못한다. 아,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위대함이여.

이런 상황이니,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 하는 날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예전과 달리 이젠 페트병에서 비닐 라벨을 떼고, 뚜껑 고리까지 완전히 분리해야 한단다. 나 같은 통증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페트병 분리수거는 험난한 산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소비자로서 이런 의무까지 가져야 하나?

윌 맥컬럼이 쓴 『플라스틱 없는 삶』(북하이브 刊)

그린피스 영국 사무소의 해양 캠페인 총괄을 맡으며 플라스틱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윌 맥컬럼에 따르면, 영국인이 1년 동안 버리는 약 130억 개의 플라스틱 병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아마도 나처럼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지 못하는(또는 안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바다로 흘러들어가 존재하는 플라스틱은 1억 5천만 톤으로 추산된다. 여기엔 크기가 5밀리미터 이하의 작은 플라스틱 입자, 마이크로비즈처럼 애초에 작게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비닐봉지, 플라스틱 병에서 마모되어 나온 조각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옷을 세탁할 때 나오는 마이크로파이버가 해양 플라스틱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한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생태 피라미드에 의해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막연하게나마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이건 알고 있었는지?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 중 14퍼센트만이 재활용을 위해 수거되고,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약 5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 2015년 ‘사이언스’지에서 발표한 해양오염 국가순위에서 3위를 차지한 나라는 필리핀이다. 그리고 마닐라 만에서 수거한 5만 4620개의 플라스틱 조각 중 가장 많이 나온 다섯 개의 기업은? 유니레버, 네슬레, 프록터 앤 갬블 등의 다국적 기업이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이미지로 광고를 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국이 다닌 다른 나라에 쓰레기를 버리면서.

언론은 끔찍한 지구 환경의 위기 소식을 끊임없이 전하고, 과학자는 우리 눈앞에 놓인 혼돈을 밝히겠다며 앞 다퉈 논문을 발표한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한 채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사실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할 의지는 있는 걸까?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윌 맥컬럼’이 쓴 『플라스틱 없는 삶』에는 플라스틱이 얼마나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지 한눈에 보여 준다. 샴푸, 샤워젤, 손 세정제, 면도크림, 일회용 면도기, 샤워타올, 각종 화장품, 칫솔, 치약, 립밤, 메이크업 리무버, 생리대, 화장지, 청소용 솔, 의류, 비닐봉지, 과일 및 채소 포장재, 육류 및 어류, 유제품, 건조식품, 간식거리, 커피, 티백, 식품 저장 용기, 주방세제, 스펀지 및 행주, 포장음식 등. 어디 이것뿐이랴. 수많은 제품이 플라스틱으로 포장재를 사용한다. 싸고 가볍기 때문이다.

최근 지질학자들이 암반에서 플라스틱 층을 발견했다고 한다. 인류의 환경파괴가 자연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새로운 지질 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르는데 그 증거가 나온 것이다. 앞으로는 이 플라스틱 층이 훨씬 두터워질지도 모른다. 오늘도 플라스틱 생산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소비자들은 선택권 없이 플라스틱 제품(또는 포장재)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재활용 비율이 5%도 안 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묵묵히 분리수거를 한다. 이후 세대에게 엉망진창이 된 지구를 물려주기 않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이제는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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