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학자 강경민 목사 은퇴예배 
영적 멘토 홍정길 목사 설교
이만열 장로, 조희연 교육감 축사 

고양을 대표하는 진보신학자로서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온 강경민 은혜교회 목사가 15일 은퇴예배를 가졌다. 은혜교회 담임 목사로서 마지막이었던 예배는 간결하고도 감동적이었다. 
강경민 목사가 은혜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영적 스승의 역할을 해준 홍정길 원로목사가 설교를 했고, 통일운동과 진보신앙의 멘토였던 이만열 장로(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와 민주화 운동 동지이자 후배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축사를, 다정한 친구인 박해천 전 조선대 부총장이 축가를 불렀다.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아는 진보 인사들은 강경민 목사에 대한 각별한 기억을 되새기며 존경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이만열 장로는 “강경민 목사는 언제나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시대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다”며 “강경민 목사의 목회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이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면서 독재를 용납했던 한국 교회의 잘못된 문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만열 장로는 “초대 진보주의 신학의 대표 주자였던 강경민 목사가 외로움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예언자들의 삶을 따라 살며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에 더욱 힘쓸 수 있길 기대한다”며 “지역공동체와 더불어 더 훌륭한 민족목회를 이어 나가시길 기원한다”고 축사했다. 
죽마고우인 박해천 전 조선대 부총장은 강경민 목사의 결혼식 축가로 불렀던 찬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은퇴식의 축가로 다시 부르며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아들과 교회 성도의 감사 인사에 이어 강단에 선 강경민 목사는 설교와 축사, 축가로 함께 해준 지인들과의 각별한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강 목사는 “그간 40년 목회를 평화롭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관심과 배려 덕분이었다”며 은혜교회 성도들에 대한 각별한 고마음을 전했다. 
강경민 목사의 40년 목회를 매듭짓는 은퇴예배는 장엄하면서도 경쾌했고,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페이스북의 거침없는 진보 논객으로도 잘 알려진 강 목사는 은퇴에 따른 솔직한 심정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하기도 했다. 은퇴예배 후 잠시 은퇴여행을 떠났던 강 목사는 일상으로 돌아와 민족상생기금운동 등 통일운동의 텃밭을 가꾸는 일과 기독교 진보 언론분야에 관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49년생인 강경민 목사는 신학 공부를 마친 후 반포 남서울교회에서 10년간 부목사로 일했고 1995년부터 은퇴 전까지 일산은혜교회 목회를 맡았다. 강경민 목사는 은혜교회가 커질 때마다 교회를 분리하고 개척교회를 지원해 대형교회로 몸집을 불리는 것을 지양했다. 교회의 몸집이 커지면 몸집을 유지하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가 곧 성공의 모델이 된 한국교회에서 강 목사의 목회는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의 한 선배로부터 정의와 평화에 기초한 기독교 사상을 배운 뒤 신학교에 진학했고, 평생 진보적 실천 신학을 중심에 두고 살았던 강경민 목사는 하나님 외에 두려운 것이 없어 보인다. 평생 정의와 공의의 편에서 섰고, 대충 타협한 적이 없다. 거침없는 글과 말로 ‘정치목사’의 프레임에 갇힐 때도 있었지만 글과 말을 굽히지도 않았다. 또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일을 게으르지 않았고, 오판에 대해서는 정중히 수정할 수 있는 학자적인 품성도 갖추었다. 강 목사는 페이스북에서 은퇴 후 교인의 자리에서 예배를 봤는데, 이 또한 즐겁다고 메모했다. 지역사회의 이웃으로 그를 만난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목회는 교회 강단을 넘어 더 크고 넓은 세상과 이웃을 향해 따듯하게 열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은퇴가 새로운 목회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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