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연령하향 따른 여파 및 전망

2019년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31일 만 18세 선거권 도입을 주도했던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들이 국회의사당역 3번출구 앞에서 자축행사를 가졌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고양시 새내기 유권자 1만여명
선거법개정 주도한 ‘청정넷’ 등
고양, 청소년참전권운동 중심
‘민주 유권자 교육’ 확대 필요

지난 연말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기존 만19세까지 였던 선거권 연령이 18세로 하향 조정되면서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4월 총선에 새롭게 등장하게 될 ‘18세 새내기 유권자’들의 수는 전국적으로 약 50만 명. 이중 고양시는 1만1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중 일부(2002년 4월 16일생까지)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됨에 따라 그동안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청소년의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각 정당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는 가운데 선거교육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후속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청소년, 시민주체로 성장계기 마련
“어떻게 보면 당연한 권리잖아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동안 선거권을 막아왔던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이번에 좋은 쪽으로 바뀐 것 같아 여러모로 기대가 커요.”

문서영(화정고3)양은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 소식에 대해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대한민국청소년의회, 고양시청소년의회 등 청소년 정치참여 활동에 활발히 참여해온 문양은 이번 개정안 발표가 나온 직후에도 SNS로 관련 내용을 공유하며 관심을 보여왔다. 이번 선거법 개정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그전까지 선거 공보물 같은 것을 봐도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 청소년들에게도 선거권이 생긴 만큼 정치인들이 우리 목소리도 귀담아 들을 것 같아 긍정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고양시 청소년차세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지(주엽고 3)양 또한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선거권을 얻게 된 새내기 유권자 중 한 명이다. 김양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첫 유권자가 된다는 사실이 매우 설레고 뜻깊다”며 “그동안 차세대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들의 참여기회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번 선거법 개정이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선거권 연령이 낮아진 것은 2005년(만 20세→19세)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그전까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만 19세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인정한 유일한 나라였다. 때문에 선거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요구가 그동안 국회 안팎에서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어왔다. 

고양시는 그동안 전국에서 청소년참정권운동을 활발히 펼쳐온 지역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2005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권 연령하향을 이뤄낸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이를 주도했던 단체가 바로 고양시 청소년 운동단체인 청정넷(청소년정치참여네트워크)이었다. 이후 잠잠했던 고양시 청소년 정치참여활동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던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국정교과서 사태 때부터였다. 당시 활동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고양파주청소년행동’이라는 단체가 결성됐고 이후 탄핵국면을 거치며 청소년참정권문제를 함께 제기하는 과정이 있었다. 당시 고양파주청소년행동에서 활동했던 양지혜 청소년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는 이번 선거법 개정운동에 적극 결합하기도 했다. 

양지혜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학교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탄압하는 모습을 접해왔고 거기에 문제의식을 느껴왔다”며 “그동안 청소년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했는데 이번 선거법개정을 통해 학교 등 일상공간에서 정치를 논의하고 올바른 시민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매우 뜻깊다”고 전했다. 

학업방해, 미성숙 논란은 일방규정
사실 이번 선거연령 18세 하향결정에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청소년들의 ‘미성숙’ 문제로 인한 정치적 편향성 문제, 교실의 ‘정치판’화 문제 등 다양한 반대논리들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이러한 문제제기가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서영 양은 “우리세대는 어른들의 시각으로 진보-보수로 나눠 설명할 수 없고 지역주의같은 편견도 없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어른들보다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부에서는 고3 교육에 정치가 방해가 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정치교육을 통해 예비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고 주입식교육의 폐해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고양시에서 청소년 토론동아리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박재열 파주 봉일천고 교사(사회과) 또한 이번 선거법 개정안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미성숙하다는 이야기는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일 뿐”이라며 “오히려 일부 고등학생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됨에 따라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 당시 고양시고등학교학생회장단연합 ‘해늘’에서 172명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경기도교육감 모의선거를 진행한 결과 실제 선거결과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교육 등 제도개선 뒤따라야
한편 이번 개정안에 따른 후속조치로 학내 ‘민주적 유권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한 인터뷰를 통해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선거에 관련된 교육, 선거권의 의미, 성숙한 민주시민을 함양할 수 있는 정치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선거관리위원회 또한 매년 진행하는 ‘새내기 유권자 민주시민 교육과정’을 더욱 확대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김현지양은 “교과과정에 ‘법과 정치’라는 과목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선거교육이 이뤄지진 않고 있다”며 “최소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후보공약을 어떻게 봐야하고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은 학교에서 이뤄졌으면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박재열 교사 또한 마찬가지 의견을 나타냈다. 박 교사는 “그동안 고양시 사회교사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투표교육을 해왔는데 이제 교육청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아울러 교내에서 정치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교사들의 자율성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교사들의 정치발언에 대한 자기검열이 워낙 심하다보니 선거교육 자체도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며 “어떻게 후보자를 바라보고 투표기준을 정할 것인지 판단하는 교육정도는 할 수 있도록 교육현장에서 유연성이 발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번 선거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청소년들의 정치참여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지혜 대표는 “정당법상 당원가입 및 활동기준은 여전히 19세로 되어 있어 적법적인 정치활동이 여전히 가로막혀있는 상태”라며 “선거법 개정에 따라 다른 규정들도 바뀌어야 하며 특히 학교현장에서도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정치발언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당시 18세 선거권 운동을 주도했던 신정현 전 청정넷 대표(현 경기도의원)은 이번 개정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까지 18세로 낮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청소년들을 교화의 대상, 혹은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여전히 한국사회의 문제점이고 이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 수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학교현장에서도 정치교육이 단순히 교과목 수준을 넘어 정치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제공, 교육프로그램, 관련 예산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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