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칼럼 <발랑까진>

▶ 청소년인권 활동가 양지혜(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씨가 이번 달부터 고양신문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발랑까진’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칼럼 꼭지명을 요청한 양지혜씨는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연관된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스쿨미투, 탈코르셋, 청소년 참정권 등 따끈따끈한 주제들을 풀어낼 예정입니다. 그는 “다른 연령대와 관심사를 가진 독자들에게도 이해 가능한 글을 쓰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편집자>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 <사진=아영>

[고양신문] 집을 나온 지도 3년이 되어간다. 나는 어느덧 스물넷이 됐다. 스무 살의 나는 입시경쟁을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 진학했던 내 친구는 내년 여름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나와 내 친구가 명절마다 듣는 말은 다르고도 같다. 나는 언제나 “이 나이 되도록 뭐했냐”, “정말 대학 안 갈 거냐”, “너 그러다 후회한다” 같은 말을 들었다. 친구는 “성적은 잘 나왔니?”, “남자친구는 없니?”, “이제 슬슬 취업 준비해야 된다” 같은 말을 듣는다. 우리 둘 다 “여자애가 옷차림이 그게 뭐니”라거나, “어린 애가 버릇이 없다” 같은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개개인의 고유한 삶에 대한 궁금함은 사라진 채, 사회에서 정해진 기준에 맞춰 살라는 요구만이 남는다.

집을 나오고 대학을 진학하지 않으며, 내가 거부하고 싶었던 건 생애주기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요구였다. 나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으며 이름 없는 청년이 되었다. 남성의 연애 대상으로 스스로를 소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어린 여성상에서 엇나가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정상성 바깥에서 나이 들고 있었다. 나이가 드는 일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나에게 가장 많이 두려움을 조장했던 것은 나의 엄마였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넌 나처럼 살지 마”였다. 그리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며, 사회의 정상성에 편입될 것을 요구했다. 세월호 집회에 나가는 것도, 대학에 가지 않는 것도, 시민단체에서 상근하는 것도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를 거쳐야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나의 삶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그들의 딸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어 시작한 인문학 세미나를 공부용 스터디라 말했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시간을 야간자율학습이라 속였다. 그들은 계속 나의 삶을 궁금해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나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당신에게 필요한 나의 삶을.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진실에서 점점 멀어졌고, 고정된 역할극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내게 엄마의 삶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가난도, 직업도, 고된 일상도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정된 역할극에서 벗어나기로 했을 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을 떠나게 됐다. 정상가족에 편입돼야 한다는 강박도 떨쳐냈다. 나를 소유하겠다는 불가능한 욕망을 가진 나의 부모도 나와 함께 살면서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집을 나와 이제야, 아주 조금씩,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관계 맺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이제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명절을 보낸다. 지난해 추석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양지혜)

설날이 돌아온다. 우리는 또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논쟁이 허락되지 않는 고정된 역할극을 강요받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하기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시건방진 일'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다. 시대의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서로의 변화를 긍정하는 삶과 관계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년 인사는 조금 달랐으면 한다. 여성이, 청소년이, 페미니스트가, 대학거부자가, 생애주기 바깥을 선언하며 유랑하는 모든 존재가 존중받는 설날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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