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이웃> 그림책 『아버지의 도시락』

<책과 이웃> 그림책 『아버지의 도시락』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기획·발간
느티나무도서관 아이들이 그림 그려

끌려간 아버지께 도시락 배달한 소년 통해
민간인학살의 비극과 공포 조명

금정굴인권평화재단이 발간한 그림책 『아버지의 도시락』(황금무덤 기획, 이승희 글, 숲에서책 그림)

[고양신문] 그림책 『아버지의 도시락』(황금무덤 기획, 이승희 글, 숲에서책 그림)은 고양땅에서 벌어진 비극적 역사인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그림책이다. 그동안 금정굴의 진실과 아픔을 조명한 책들이 여러 권 나왔지만, 특정한 장면 하나를 선택해사건 전체의 비극성을 짚어낸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묵직한 주제를 담았지만,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예쁘고 이야기를 건네는 톤도 무겁지 않아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이 부담 없이 펼쳐들기에 적당하다.

주인공 소년은 경찰서로 끌려간 아버지에게 전해 줄 도시락을 배달한다.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무서운 경찰 아저씨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면 다음날 내용물이 깨끗이 비워진 채 돌아온다. 그러나 어느 날 도시락은 반밖에 비워지지 않은 채 돌아왔고, 경찰 아저씨는 “내일부터는 밥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는 무서운 말을 들려준다. 그림책은 먼 훗날 희생자의 후손들이 제사상에 절을 하며,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책 뒷부분에는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의 실상과 의미, 그리고 희생자 유족회 결성과 재단 설립 과정을 요약한 ‘도시락과 인권’이라는 글을 자료사진과 함께 첨부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을 펴낸 곳은 인권·평화활동 단체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이사장 심재환)이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이현옥 사무국장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된 고양 금정굴의 가슴 아픈 역사를 일반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황금무덤’이라는 문화기획 모임을 만들어 이야기를 발굴하고 책을 제작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2018년 11월부터 시작된 황금무덤에는 김은주 사진작가, 이도영 시민활동가, 이승희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장, 이혜정 외대 철학과 교수, 그리고 이현옥 사무국장 등 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우선 금정굴 사건의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이 벌어진 지 70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마음에 새겨진 공포와 상처는 여전히 생생했다. 그 중 사건 당시 10살 꼬마였었던 한 어르신이 들려 준 아버지와 도시락에 대한 이야기를 첫 책의 소재로 택했고, 이승희 관장이 이야기를 정리하고 어린이 동아리 ‘숲에서 책’이 그림을 그려 예쁜 그림책으로 꾸몄다.

숲에서 책은 매 주 느티나무도서관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모임으로 이번 작업에는 김가연, 이가온, 이준, 이지한, 임수민, 정하음, 차오름, 홍지유 어린이가 참여했다. 이승희 관장은 “아이들과 금정굴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 그리고 싶은 장면을 자발적으로 정해 그림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위해 뜻 있는 일을 했다는 사실에 모두들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희생자의 후손들이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지막 장면.

이현옥 사무국장은 “『아버지의 도시락』을 유사한 아픔을 간직한 전국의 민간인학살 유가족 단체에 발송했는데, 이곳저곳에서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돌아왔다”면서 “이 책이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은 『아버지의 도시락』을 지역 공공도서관과 학교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또한 금정굴 현장 방문자들과 학교 평화교육 참가자들의 교육용 교재로도 사용할 계획이다. 이현옥 사무국장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책을 읽으며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면서 “이 책이 금정굴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는 감성적인 문을 여는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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